[한혜경의 ‘100세 시대’]<2>오죽하면 아내를 죽였을까? ‘노노(老老) 간병’ 이라는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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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A 씨(77)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5년째 돌보고 있다. 건강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모두 바닥난 느낌이다. 치매는 본인보다 간병인이 더 고생하는 질병이다. 몸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이다. 얼마 전에 집으로 찾아온 사회복지사는 A 씨의 우울증세가 심각한 것 같다면서 의사의 진단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치매 아내 장기간 돌보며 심신 피폐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않았지만 A 씨는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 3년 전 아내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A 씨는 3남매를 불러 모았다. 다행히 자식들은 6개월씩 돌아가면서 간병을 맡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때부터 온 가족의 사이가 완전히 벌어졌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으르렁댔다. 특히 딸 둘은 두 달 만에 “엄마가 망가지는 걸 도저히 못 보겠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며 손을 들었다. 결국 A 씨 부부는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실컷 고생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그동안 아내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A 씨는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치매에 걸렸지만 알 건 다 아는구나. 쓸데없이 자식들 집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만 시켰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러고는 ‘이젠 아무도 안 믿는다. 죽을 때까지 내가 돌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A 씨는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간병했다. 대소변 수발 때문에 외출하기도 힘들지만, 점점 어디 갈 데도 없어지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어졌다. 사람들한테 마누라 치매 걸렸다는 말을 하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집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싫었다.

사회복지사로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겼으니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해서 등급 판정을 받도록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자식도 못하는데 누가 아내를 돌보겠는가’라는 게 A 씨의 생각이다.

지금 그가 가장 바라는 건 아내의 증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그만 숨이 멎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도 마음 편히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을 때, A 씨는 ‘이러다 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53만 명 정도이다. 이는 전체 노인인구의 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날수록 치매 노인의 수는 더 증가할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5년에는 치매 노인이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노인 부부끼리만 사는 노인가구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와 별거하는 노인가구의 비율은 1990년에는 27%였지만 2011년 현재 68%로 지난 21년 사이에 41%포인트나 증가했다.

즉, 우리는 치매에 걸린 노인에 대한 간병을 배우자인 노인이 맡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은 배우자 간병이 많지만, 앞으로는 70대 노인이 90대 노부모를 간병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노 간병’도 증가할 것이다.

노인이 노인 돌보는 ‘老老간병’ 급증

문제는 노노 간병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간병살인’과 ‘간병자살’도 대부분 노노 간병의 결과이다. 특히 이런 일이 대부분 남자노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0월 전북 익산에서 일어났던 75세 남자노인의 아내 살해와 자살이나 지난달 19일 경찰에 구속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모 노인(78)의 아내 살해가 대표적이다.

노노 간병의 치명적 약점은 무엇일까? 우선 간병하는 노인들, 특히 남자노인들은 ‘죽을 때까지 내가 아내를 지켜주겠다’는 책임감이 너무 큰 나머지 자기 자신도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치매 간병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간병을 하려면 우선 본인부터 지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치매 간병을 하는 노인들은 자신을 챙길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움 받을 곳이 없다’는 생각도 문제다.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치매나 중풍 노인을 돕기 위한 제도다. 몇 가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있기는 하나, 2008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치매를 앓고 있는 당사자나 간병인이 얼마나 정보에 민감하고, 자원을 이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또 하나, 홀로 간병하는 노인일수록 자녀에 대한 분노나 서운함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식도 못하는데 누가 도와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마음과 말만 앞서는 가족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시설이 백배 낫다. 요양시설이 싫다면 집에서 방문요양이나 방문간호, 방문목욕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내가 만나 본 성공적인 노노 간병인은 예외 없이 외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간병과 복지서비스를 적절히 배합하는 경우이다. 그래야 간병인은 물론 환자의 삶의 질도 높아진다.

숨기지 말고 외부에 도움 요청해야

치매 간병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노노 간병’은 더 힘들다. 오죽하면 살인까지 할까. 이런 점에서 정부나 서비스 기관도 노인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만 말고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노인들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치매 노인을 간병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의 이름으로도, 살인이나 자살이 답은 아니다. 당신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도와 달라’고 말해야 한다. 특히 남자노인일수록 각종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문을 열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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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 간병#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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