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13>필문기정(必聞其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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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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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 반드시 필 聞: 들을 문 其: 그 기 政: 정사 정

논어 ‘학이’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어떤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를 들으십니다. 그것은 공자께서 요구하신 겁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주는 것입니까(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공자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위정자들이 공자의 정치 감각을 높이 평가해 그렇게 된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자공이 누군가. 언어에 뛰어나 외교 관계 등 대외 협상에 능했고 늘 공자를 모시고 제후국을 주유했으며 공자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제자였다. 자공이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행렬을 거느리며 제후국을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그 곁에는 공자가 있었다.

자금의 물음에 자공의 답은 이러했다. “어른께서는 따사로움 선량함 공경 절약 겸양으로 그것을 얻은 것이니, 어른께서 그것을 구한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르겠지요(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이 문장에서 ‘기저(其諸)’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하는 말투로 스승의 자발적인 정치행위를 한마디로 평가하는 게 조심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자공이 이런 평가를 내린 데는 공자가 내세우는 정치가 기존 틀과는 전혀 다른 덕치에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인(仁)과 예(禮)를 주창했고 늘 이상론에 치우친 공자의 비현실성은 거의 모든 제후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자공이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공자는 학자였지 정치가는 아니었고 이론가였지 실천가도 아니었기에 그가 주장한 내용들이 제후들에겐 공허하게 들렸으며, 비록 ‘필문기정’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공자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 교육에 정열을 바쳐 2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사표(師表)로서 추앙받고 있으니, 공자의 입지는 정치보다는 교육에서 독보적이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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