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기타의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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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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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시가 있었지. 세계라 불리는 이상한 작은 도시. 외롭디 외로운 작은 도시.’

- 로이 부캐넌 ‘The Messiah Will Come Again’(1972년)
1988년 8월 14일 이른 아침.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의 구치소. 48세의 부캐넌 씨가 감방 천장에 자신의 셔츠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순찰하던 경찰이 발견했다.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신 혐의로 전날 체포된 그를, 경찰서와 구치소에서는 흔한 거리의 부랑아쯤으로 쳤다. 그를 알아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고독한 자살을 택한 로이 부캐넌은 1970년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의 인생은 늘 어두웠다. 조명은 잘 비춰들지 않았다.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턴의 그늘에 가려 있던 그는 그러나 끝없이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를 들고 블루스와 록, 컨트리를 연주했다.

부캐넌이 1972년 발표한 메이저 데뷔 앨범 ‘로이 부캐넌’의 일곱 번째 트랙인 5분 55초짜리 연주곡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은 예수에 관한 곡이다. 앨범 전반부에서 블루스와 로큰롤, 컨트리를 오가며 종횡하던 부캐넌은 이 곡에서 불 꺼진 예배당에 조용히 무릎 꿇듯 경건하고 음울한 정서를 뿜어낸다. 곡은 먹먹하게 울먹이는 전자기타와 음울하게 깔리는 오르간 소리로 시작한다. 곧이어 오르간 반주 위로 부캐넌의 조용한 읊조림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 저마다 할 얘기가 많았지만 이번엔 내가 내 방식대로 얘기해보겠다’는 부캐넌의 ‘이야기’는 ‘세상이라는 외로운 도시’에 다녀간 청년, 예수에 관한 것이다.

부캐넌이 새로 쓰는 신약성서는 소박하다. ‘세상이라는 작고 외로운 도시에 어느 날 낯선 이가 나타났고, 슬펐던 그 도시는 행복해졌지만 의심하고 모함하는 사람들 탓에 그이는 떠나갔고 세계라는 이 도시는 전보다 더욱 슬퍼졌다.’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난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을 많이도 걸어 다녔지만, 알고 있어. 메시아, 그가 다시 오리라는 것을….’

2분 55초. 부캐넌의 들릴 듯 말 듯한 읊조림이 끝나고 오르간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 기타의 처연한 벤딩(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지판의 수직 방향으로 끌어올리거나 당겨 음정을 올리는 기술)과 함께 드럼, 베이스가 가세하며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조용히 우는 듯한 기타 연주는 오르간 소리와 어우러지며 종교적 고백처럼 들린다. 먼 방황의 길을 돌아 마침내 고해소 앞에 무릎 꿇은 탕아의 그것 같은.

죽을 때까지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부캐넌은 물론이고 그의 기타, 텔레캐스터마저도 외로웠다. 둥글둥글한 스트라토캐스터와 함께 세계적 기타 명가 펜더사(社)를 대표하는 모델인 날렵한 모양의 텔레캐스터는 스트라토캐스터에 최고의 명성을 내준, 상대적으로 덜 쓰이는 모델이다. ‘소리가 너무 날카롭고 땡땡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지 못 한다’는 이 기타만 쓰는 기타리스트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굳고 고집이 센 경우가 많다.

부캐넌은 대중음악 사상 가장 평가절하된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힌다. 슈퍼스타들의 빛에 가렸지만 비틀스의 존 레넌이 존경했고, ‘기타 도인(道人)’ 제프 벡이 자신의 1975년 명반 ‘Blow By Blow’에 5분 52초짜리 연주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녹음해 부캐넌에게 바쳤다. 게리 무어는 부캐넌 사망 다음 해인 1989년, 자신의 앨범 ‘After The War’에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7분 32초짜리 연주곡으로 확장해 수록한다. 무어는 이 곡에서 ‘Parisenne Walkways’(1979년), ‘Still Got The Blues’(1990년)에 필적할 명연을 펼친다. 특히 4분 30초경 리듬 파트가 잠시 잦아들며 부각되는 기타의 짧게 반복되는 울음소리는 이 곡의 조용한 압권이다.

작은 도시가 있었다. 거기 한 사람이 다녀갔다. 도시가 더 외로웠는지, 그이가 더 외로웠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이는 예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쓰고 연주한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은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신약’처럼 지금도 세계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도시의 밤,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윤희림 과학자, 로커, 래퍼. 세 꿈 다 못 이뤘다. 심지어 어른도 못 됐다. 안 되면 또 어때. 음악이 있는데

theugly76@gmail.com
#기타#이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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