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20>내 아이를 위한 ‘최고의 교과서’가 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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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남자는 출장 중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폭행을 당해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남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밤늦게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눈과 코에 멍이 들고 부은 정도였다.

“무슨 그런 엄마가 다 있어? 자기네 애는 잘못이 없고 우리 애가 시비를 걸었다는 거야.”

아내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아이가 여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떠드는 ‘노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던 것이 싸움의 빌미가 됐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그 녀석이 다짜고짜 달려들었다는 것.

남자가 아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었다. 반항심에 혹은 거들먹거리는 맛에 요란하게 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불행이었다. 불과 열몇 살에 인생의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줄곧 내리막길을 탔다는 게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전성기를 일찍 맞이한 것만 한 불행이 없다’는 진리는 소년등과(少年登科)만이 아닌 것이다.

“아까 다친 것을 봤을 때는 화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우리가 애를 잘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 옳은 일을 위해서 용기도 낼 줄 알고.”

아내의 말에 남자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학창시절 ‘짱 노릇’을 했던 녀석의 근황을 얼마 전에 들었던 게 기억났다. 녀석은 퇴학을 당한 뒤 우여곡절을 겪었고 나이가 들어서야 마음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빠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처럼.

녀석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게 어떤 건 줄 알겠다. 아들놈만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는데, 내가 잘 살지 못한 죗값을 이렇게 치르게 되는구나.”

인생은 상상보다 잔혹하다. 잘못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앙갚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 앙갚음은 과거의 잘못이 만든 고통스러운 현실이며, 두 번째는 자식에게 이어지는 ‘인생유전’이다.

부모 된 마음에선 두 번째가 끔찍하게 아프다. ‘너만은 잘되길’ 바랐던 기대는 간 곳이 없고, 아이가 가슴에 박은 대못만이 처연히 남는다. 더구나 자신이 걸어온, 후회로 점철된 길을 아이가 똑같이 걷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남자는 밥상머리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먼저 삶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른바 ‘뒷모습 교육’ 말이다. 자기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부모만큼 좋은 교과서가 아이에게는 없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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