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한가지 언어로만 평생 노래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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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맑음. 중국어, 프랑스어, 체코어, 희망어, 그리고. 트랙#14 Sigur Ros ‘Ekki Mukk’(2012년)

중국인 4명, 한국인 2명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그룹 엑소엠(Exo-M)에게 좀 미안하다. 그들의 데뷔 미니앨범 ‘마마’를 발매 2개월이 넘은 지난 토요일에야 들어봤다. 변명거리는 있다. 소속사가 4월 9일, 이 음반을 한국인 6인조 엑소케이(Exo-K) 것과 동시 발매했는데, 제목과 가사가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로 돼 있다는 것을 빼면 앨범에 수록된 6곡의 내용이 똑같다. 그래서 한국어로 된 엑소케이의 음반만 들어보고 만 것이다. 팀명의 ‘K’와 ‘M’은 각각 Korea와 Mandarin의 약자다.

‘마마’ ‘왓 이스 러브’ ‘머신’ 등의 곡에서 랩과 노래로 들리는 중국어는 때로 강렬하고 때로 부드러웠다. 한국어 버전과 다른 맛이었다. 평소엔 사납게 들리던 중국어가 악곡 때문인지 세련되게 느껴졌다. 하긴 어렸을 적 읽은 삼국지에서 가슴을 둔중하게 울렸던 영웅호걸의 명언들도 본디 누군가는 ‘시끄럽고 방정맞다’고 할 중국어였을 거다.

노랫말이란 참 중요하다. 똑같은 가사도 가창자의 발음에 따라 달리 들리는데 언어가 다르면 그 차이가 오죽할까. 자기 음악 안에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10일 내한공연을 연 독일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우테 렘퍼는 모국어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를 넘나들며 노래했다. 최근 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아이슬란드 록 밴드 시규어 로스는 이국적인 아이슬란드어 제목과 가사로도 부족한지 때로 직접 만든 ‘희망어(希望語)’로 노래한다.

러시아 태생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지나 스펙토르도 얼마 전 새 앨범을 냈는데, 그의 2006년 곡 ‘아프레 무아’에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가 섞여있다. ‘닥터 지바고’를 쓴 러시아 문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 ‘2월’을 원어로 삽입한 것.

8월 내한하는 체코 뮤지션 마르케타 이르글로바는 앨범 제목(‘아나르’·2011년)에 페르시아어를 썼다. 그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음악 영화 ‘원스’(2006년)의 가장 결정적인 대사도 영어가 아닌, 이르글로바가 내뱉는 짧은 체코어였다. 자막도 넣지 않아 알쏭달쏭했던 그 말, 밀루유 테베(Miluju tebe·사랑해). 어떤 언어에서든 가장 아프고 아름다운, 바로 그 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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