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며/송정양]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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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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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양 동화작가 극작가·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송정양 동화작가 극작가·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열 살이 됐을 때 처음으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른들과 똑같은 두 자릿수의 나이를 갖게 되었으니까. 부모님의 회초리 한 방에 착각은 금방 부서졌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었을 때 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부모님들은 모르는 말을 쓰고, 모르는 공간에 가고, 비밀이 늘어갈 때마다 어른이 되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는 정말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술집도 투표장에도 들어갈 수 없는 주민등록증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여차하면 감옥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금지되었던 모든 것의 접근을 허가받았을 때 당연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전화 한 통이면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던 나는 여전히 애였다.

처음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처음 이별을 했을 때,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이제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다 컸어요”라고 외쳐보아야 세상은, 어른들은 모르는 척했다. 나의 의견은 무시되기 십상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학생이란 말을 붙여가며 애 취급을 하기 일쑤였다. 졸업을 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말이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거지? 어른이 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는 벅차기만 하고 수없이 날아오는 고지서들에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월요일에 보일러를 고쳤는데 화요일은 변기가 고장났고 어버이날도 챙겨야 했는데, 어제는 수도료 감면 신청을 해야 했고,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고, 내년엔 전셋집을 새로 알아봐야 한다. 나는 무너지는 둑을 막고 서 있는 소년이 된 기분이다.

어수룩하게만 보였던 부모님이, 아니 나보다 하루라도 이 고된 시간을 더 살아낸 모든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어른이 되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이 정도의 일로 앓는 소리를 하다니 어른스럽지 못하다. 그렇게 화를 내다니,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참았어야 했는데 모든 것이 어른스럽지 못하다. 매일 나의 어른스럽지 못함을 반성하고 누군가의 어른스럽지 못함을 비난하지만 나도 그 누구도 조금도 더 어른이 되는 것 같지 않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될까?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어른이 될까? 공자님 말씀대로 사십이 되면 사리 판단에 흔들림이 없어지고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까?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워버린다. 그런 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 세상에 완벽한 어른은 없다.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고 거대한 인생 앞에 낑낑대는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린이다.

속으로 외롭게 울지 말자. 너도 나도 그도 때로는 실수도 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앓는 소리도 하고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다.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하기가 무엇하다면 아쉬운 대로 신에게 앓는 소리를 해보자.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자.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는 부모님이 어른이 아니듯이 어쩌면 신조차 어린이인지도 모르니까.

송정양 동화작가 극작가·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찬잣을 들며#송정양#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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