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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김단혜]아버님이 주신 상금

    냉동실에서 하얀 봉투를 꺼낸다. 냉각기에서 나오는 서늘한 공기는 이내 나른한 기운으로 바뀐다. 그해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화장솔 같은 자귀나무 꽃잎 위로 금화처럼 쏟아지던 햇살에 발길을 떼지 못했다. 챙 넓은 모자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로도 그

    • 201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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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안정희]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인천공항에 총천연색 깃털을 머리에 꽂은 그들이 나타났다. 큰 키에 원색 옷, 촘촘히 땋아 올린 새까만 머리와 새까만 눈동자, 뱉어내는 이상한 언어들. 시선을 사로잡는 그들은 아프리카 투르카나 부족민들이다. 고아였던 그들을 20여 년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선교사님

    • 201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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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문장옥]그 많은 소리 중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뭘까

    잠자리 날갯짓 같은 작은 소리에도 생명의 울림이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그런 작디작은 생명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다. 모든 사람의 말소리에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소리에는 화자의 마음과 혼이 그대로 들어 있다. 잠귀가 열리듯 마음의 빗장을 벗어 버리고

    • 201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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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이진경]2012년 6월의 나

    급브레이크의 향연으로, 도로주행에서 떨어졌다. 사이드미러를 보지도 않고 차선을 두 번이나 바꿔버렸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검정관이 기어이 짜증을 냈다. 4만 원으로 재시험 기회를 사고, 버스를 탔다. 얼른 집에 가서, 백일도 안 된 둘째 녀석을 병원에 데려가야 한

    •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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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이현숙]‘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

    서울 지하철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2호선 열차로 갈아타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간다. 둘 다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다. “이렇게 우툴두툴한 곳만 따라가는 거야.” “앞에 우툴두툴한 곳이 없으면 길이 없는 거야

    • 201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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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윤중일]자랑스러운 ‘손톱 밑의 기름 때’

    일전에 타정총(공기압을 이용해 못 등을 박는 데 쓰는 공구)을 잘못 건드려 2cm 길이의 U자 바늘이 손가락을 뚫고 손톱 위로 관통했다. 손가락은 다른 곳보다 핏줄이 많은지 금방 피가 펑펑 쏟아졌다. 종이로 된 접착테이프로 동여매고 나서야 피가 멈췄다. 다행히 뼈는 다

    •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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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이춘자]좌판의 30대 여인과 어머니

    대광리 장 구경을 간 날이다. 장이 서는 곳을 가끔씩 기웃거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장마당에서 잔치국수를 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한 바퀴 둘러본다. 그때 어릴 적 보았던 야전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잡화를 차려 놓은 야전침대 옆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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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송정양]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열 살이 됐을 때 처음으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른들과 똑같은 두 자릿수의 나이를 갖게 되었으니까. 부모님의 회초리 한 방에 착각은 금방 부서졌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었을 때 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부모님들은 모르는 말을 쓰고, 모

    •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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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김은주]“당신은 행복하세요?”

    5월의 날씨는 여름을 스크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일 최고기온은 20도를 상회하고,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날도 있다. 사람들이 옷 입기에 가장 곤란함을 느낀다는 온도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하고(옷장은 이미 넘쳐나는데도!

    •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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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안영환]수줍음의 비밀

    노년에 이르러서도 수줍어하는 여인이 있다. 알몸을 내보이는 것도 아닌데 작은 일에도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은 황혼기의 그녀를 보노라면 가을 국화꽃 향내 같은 것이 실려 온다. 길고 긴 풍상의 세월에서 뻔뻔스러워질 법도 하련만 보이지 않는 그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기

    • 201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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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권민경]물총 놀이하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중국음식점을 운영했다. 가게에 딸린 작은 쪽방에서 네 식구가 생활했다. 가정집과 가게의 구분이 따로 없었으므로 나는 자주 홀에 나와서 놀았다. 7세 때 일이다. 가게 영업이 끝나기 전, 나는 손님이 없는 홀에서 물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상

    • 201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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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한동희]숙제 없는 인생, 축제 같은 인생

    동료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C 선생이 두통을 호소했다. 머릿속을 굵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고, 그로 인해 직장생활도 원만치 않은 모양이다. 종합검진을 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니 미칠 지경이란다. 그는 꼼꼼하고 성실하다. 여러 일에 관

    •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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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정재민]봄비 내리면 왜 설레는 걸까

    건조한 엘리베이터 안이다. 퇴근 시간이 지난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더 넓고, 더 어둑하다. 엘리베이터에는 나와 다른 남자 둘뿐이다. 둘은 빨간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두 점이 직선을 그리며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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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지연희]꽃비 내릴 봄날이 저만치 오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메마른 땅속 저 깊이에서 숨죽여 생명의 박동을 키우는 씨앗들의 꿈틀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감은 눈꺼풀 속으로 스며드는 파릇한 꽃의 근원들이 흙을 비집고 일제히 숨을 돋으며 세상 속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며칠 전 경칩이 지나고 머지않아 춘

    •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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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들며/고동주]진주조개의 아픔, 연단받는 인간의 아픔

    우연한 동기로 한산섬에 있는 해송진주양식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사장의 안내로 진주 씨를 잉태시키는 시술실에 들어서니, 벽면의 ‘정숙’이라는 큰 글자가 분위기를 조용히 감싼다. 젊은 남녀 시술사 10명이 탁자를 앞에 두고 정성스레 조개 수술을 하고 있었다. 진주의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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