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대형마트 잡으려다 서민들만 잡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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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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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 영업시간 제한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으면 10년 전 셔틀버스 운행 금지 논란과 닮은 점이 많다. 대선을 1년여 앞둔 2001년 6월 30일, 정부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했다. 정부와 국회는 셔틀버스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소비자들은 자가용을 탔고 백화점 매출은 이듬해 10∼20%대씩 성장했다. 전통시장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의 조치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엉뚱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당시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셔틀버스를 운전하던 한모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구멍가게도 운영해 보고 시내버스 회사에도 취업해 봤지만 세 자녀를 부양하기에는 수입이 너무 적어서 셔틀버스 운전을 하게 됐다. 월급은 약 180만 원. 35인승 차량은 자신이 직접 구입해야 했다. 부모님이 땅을 팔아 마련해 주신 7000만 원이 차량구입자금이었다.

정부의 규제 조치로 그는 졸지에 거리에 나앉았다. 외환위기를 겪고 난 기업들은 그를 고용해줄 만큼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됐으니 차도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빚을 내 산 1t 트럭으로 운송업에도 도전해 봤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았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고 술로 마음을 달랬다. 2006년 복통을 참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숨을 거뒀다.

물론 한 씨의 사례는 극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금지 조치로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3000명(유통업계 추산) 중 상당수가 남모를 고통을 겪었다.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저인망식 점포 확장으로 전통상권을 황폐화시켜 비난을 자초한 대형 유통업체들을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전통시장을 살리는 효과는 전혀 없으면서, 표심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대기업을 때리고 보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형마트의 영업일이나 영업시간을 ‘무리한 방법으로’ 제한하면 대형마트에 납품해 생계를 유지하는 중소 농수산업체에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한 씨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우려는 없는지도 한 번쯤 살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강유현 산업부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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