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시들해진 중국의 폭죽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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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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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요즘 잠을 설치고 있어요.”

중국 베이징(北京)에 사는 한국 여성 김모 씨(38)는 5일 퀭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폭죽의 굉음에다 가슴을 꽉 막히게 하는 탁한 공기,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그는 요란하기로 유명한 중국의 춘제(春節·중국의 설) 폭죽놀이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기관총이 온종일 곳곳에서 발사되는 시가전을 떠올리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음력 섣달 그믐날 시작된 폭죽놀이는 6일 위안샤오제(元宵節·정월대보름)까지 16일간 이어진다.

그런데 올해 춘제 폭죽놀이의 열기는 예년보다 아주 덜하다.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베이징에서만 폭죽 판매량이 20%가량 줄었다. 폭죽으로 인한 화재는 13%가량, 사상자도 50%가량 줄었다. 이맘때 병원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호흡기환자의 행렬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 전역에서 관측되고 있다.

중국에서 폭죽놀이는 제사와 같은 의식적 성격을 띤다. 좋은 기운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벽,피)邪) 행위이다. 한 달 월급에 가까운 돈을 한순간의 폭죽놀이에 퍼붓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불꽃막대를 쥐여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춘제 폭죽놀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돼 5세기 남북조시대에 이미 즐겼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의 눈에도 중국인의 춘제 폭죽놀이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사신들이 베이징을 방문해 남긴 연행록에는 연초에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린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적혀 있다. 사고와 화재 위험, 환경오염 등 무수한 폐해 탓에 현대 들어 춘제 폭죽놀이는 정부 차원에서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수한 원성에 밀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허용됐다. 중국인의 사고와 생활에 그만큼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중국인들은 폭죽놀이에서 자신의 창의성과 오랜 번영을, 또 근대의 시련과 굴기(굴起·떨쳐 일어남)를 보기도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인류의 4대 발명 중 하나인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했다. 서양 국가들은 중국에서 배운 화약제조법을 발달시켜 19세기 이를 토대로 중국을 유린했다. 그사이 중국인은 폭죽놀이에만 빠져 있었다는 개탄이 한때 중국의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했다. 개혁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국에서 폭죽은 현재 연간 100억 위안(약 1조8500억 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중국의 하늘에는 최근 수년간 역사상 가장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져 왔다.

이런 풍속이 올해 갑자기 시들해진 이유는 뭘까? 썰렁한 체감경기와 폭죽 가격 상승, 전통에 둔감한 젊은 세대, 높아진 환경 의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정부의 엄격해진 관리에 더 비중을 둔다.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폭죽의 규격, 터뜨리는 장소와 시간 등을 정해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상공 300m까지 치솟아 반경 20m의 거대한 불꽃을 내는 대형 폭죽은 올해부터 일반인에게 판매를 금지했다. 건물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음으로 중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위험하니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거셌기 때문이다. 또 공안은 터뜨리는 장소를 지정하고 이를 엄격히 지키도록 단속한다. 지난해만 해도 공안은 폭죽놀이 편의를 위해 교통 통제까지 했다. 베이징 시의 경우 상공 500m에 헬기를 띄워 감시하고 있다.

1500년 이상을 이어온 중국인의 별난 풍속이 안전과 규격, 환경이 강조되면서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마침 중국도 화려한 고성장보다는 균형과 내실을 갖춘 안정적인 성장을 요구받고 있다. 올해 춘제 폭죽놀이가 시들해진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일까?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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