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탁구 라켓을 잡자, 병준의 말문이 터졌다… 아빠의 웃음도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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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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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아들 병준과 아빠 손은수, 탁구로 시작한 ‘특별한 사랑… 그리고 도전’

녹색의 작은 테이블은 탁구 부자(父子)의 커다란 희망이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하길 아버지가 바랐던 아들은 8월에 개막하는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다. 메달을 딸 가능성도 높다. 무뚝뚝한 아버지 손은수 씨(왼쪽)는 아들의 손을 잡아달라는 사진 포즈 요청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은 아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사진 찍을 때는 웃어야 돼.” 춘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녹색의 작은 테이블은 탁구 부자(父子)의 커다란 희망이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하길 아버지가 바랐던 아들은 8월에 개막하는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다. 메달을 딸 가능성도 높다. 무뚝뚝한 아버지 손은수 씨(왼쪽)는 아들의 손을 잡아달라는 사진 포즈 요청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은 아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사진 찍을 때는 웃어야 돼.” 춘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큰아들이 몇 학년이지? 그래, 공부는 잘하고?” 살면서 셀 수 없이 들어온 질문. 그때마다 손은수 씨(46)는 애써 못 들은 체하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면 안 된다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 평소 소주 반병이던 주량은 두 병을 훌쩍 넘겼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먹먹함을 술로 눌렀다. 딸 얘기가 나오면 달랐다.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며 칭찬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딸 혜린(16)을 편애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병준(17)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들이었다. 》
○ 한숨… 감추고 싶었던 아들

“그렇게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우미정 씨(47)는 남편 손 씨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했다. 두 사람은 1991년 강원도민체육대회에서 원주 남자 대표와 여자 대표로 만났다. 우 씨가 초등학교 때 잠시 탁구를 했던 게 인연이 돼 출전한 대회였다.

남편도 초등학교 때 탁구를 시작했다. 꽤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 씨와 달리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강원도의 탁구 명문 성수중고교를 졸업한 뒤 강원대 체육교육학과에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고교 졸업 후 실업 팀에 입단하려다 진로를 바꿨다. 마음 같아서는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중학교 무렵 성장이 멈춘 체격이 발목을 잡았다. 선수로 대성할 수 없다면 교사 자격증을 따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남편은 대학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제대 후 3년을 기다린 끝에 강릉의 한 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두 사람은 그해 결혼을 했고 이듬해 병준이 태어났다.

남편으로서 그리 자상하지 않았던 손 씨는 아빠로서도 그랬다.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면 그것으로 가장의 역할은 다했다는 생각이었다. 아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도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야 알 정도였다.

늘 아들과 함께 생활했던 엄마 우 씨는 그럴 수 없었다. 여러 면에서 여동생보다 뒤처지는 오빠를 보며 ‘사내애라 늦나 보다’ 하며 위안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아들이 조금씩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것도 걱정이 됐다. 어느 날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이 엄마를 불렀다.

“병준이가 이상해요.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보세요.”

나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어렸기에 정확하게 등급 판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적장애가 확실하다고 했다. 그제야 남들과 다른 아들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우 씨는 남은 인생을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야 했다. 독해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역할, 지나간 세월보다 다가올 세월이 훨씬 무거운 자리였다. 그리 독하지 못했던 엄마는 조금씩 무너졌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리게 됐다.

○ 소통… 父子 탁구로 대화하다

아빠는 아이가 머리가 좀 나쁜 줄로만 알았다. 운동을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 라켓을 쥐여 줬다. 아들은 싫다고 했다. 억지로 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병준은 결국 5학년 때 병원에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공부로는 다른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고 사회생활도 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아·빠·가·나·서·야·했·다.

작은 운이 따랐다. 아빠는 마침 병준이 6학년이던 2007년에 탁구부가 있는 강릉 관동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학교에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한 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탁구 특기생으로 입학시켰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병준은 교실에서 입을 닫았다. 놀림을 받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탁구를 할 때는 말문이 트였다. 아빠는 아들과 함께 학교 숙소에서 먹고 자며 탁구를 가르쳤다. 주말에나 겨우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탁구는 병준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아빠, 나 탁구가 좋아. 유승민 형처럼 국가대표 하고 싶어.”

어눌했지만 또박또박, 아들은 말하곤 했다.

“그래, 지금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면 너도 올림픽에 나갈 수 있어.”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 당시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 지적장애인이 나갈 수 있는 종목은 없었다.

아빠는 절박한 심정으로 라켓을 잡았다. 아들이 별로 소질이 없다고 느꼈기에 남들보다 몇 배 더 훈련을 시켰다.

아들은 2011년 춘천 성수고에 진학했다. 강원도에서 탁구부가 있는 유일한 고교였다. 아빠는 사립인 그 학교에서 근무를 할 수 없었다. 공립학교인 남춘천여자중학교에 자원했다. 성수고 탁구부는 평소 남춘천중학교 체육관을 사용했다. 아빠는 아들이 팀 훈련을 마치면 바로 옆에 있는 남춘천여중 체육관으로 데려와 다시 훈련을 시켰다. 강릉에서 함께 살던 엄마와 딸은 원래 집이 있던 원주로 돌아갔다. 아빠는 춘천 시내에 원룸을 얻어 아들과 함께 살았다. 본격적인 부자(父子)만의 동거가 시작됐다.

○ 행운… 런던 패럴림픽 탁구 부활

큰 운도 따랐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는 2009년 총회에서 탁구, 육상, 수영에 한해 지적장애인 종목을 부활했다. 올해 런던 패럴림픽부터 적용된다. 지적장애 종목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처음 생겼다. 당시 휠체어농구에 출전했던 스페인 선수가 자국에 돌아간 뒤 자신이 지적장애가 아닌데 출전했다고 밝힌 게 문제였다. IPC는 지적장애는 정확한 등급 분류가 어렵다는 이유로 관련 종목을 잠정 폐지했다. 다행히 최근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측정 방법을 정립하면서 지적장애인들의 패럴림픽 출전 기회가 다시 열렸다.

2010년 5월 광주에서 지적장애 탁구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처음으로 출전한 장애인 대회에서 병준은 10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아빠, 나 이제 올림픽에 나가는 거지?”

비장애인 대회에 나갈 때마다 지는 일에 익숙했던 병준은 잔뜩 흥분했다.

“아직은 몰라.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남은 국제대회에서 잘해야 돼.”

아빠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자신의 꿈이기도 했던 올림픽 무대에 아들이 설 수도 있다는 게 꿈 같았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섣불리 기대에 부풀게 했다가는 실망이 더 클 수 있다.

“병준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더 열심히 해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어.”

“나, 올림픽 꼭 나갈 거야. 금메달 딸 거야. 금메달 따면 돈 받는다고 했어. 돈 벌어 잘살고 싶어.”

아빠가 아들에게 탁구를 시킨 건 어떻게 해서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는 아빠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생각하기 싫었다.

병준은 지난해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지적장애종합대회에 출전해 금메달과 은메달을 하나씩 땄다. 12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장애인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단식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런던 패럴림픽 출전권도 확보했다.

○ 희망… 꿈꾸는 아들 거드는 아빠

“자, 간다.”

아빠가 라켓을 휘둘렀다. 아들의 왼쪽으로 강하게 공을 날리더니 이내 오른쪽으로 서브를 넣었다. 쉴 새 없이 탁구공이 오간다. 금세 아들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빠가 잠시 숨을 고른다.

“아빠, 계속해요. 나 괜찮아요.”

어린 아들은 체력이 좋다. 키도 아빠보다 훨씬 크다. 병준은 2월이면 런던 패럴림픽 대표 선수 자격으로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 들어간다. 200일간의 집중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아빠보다 더 젊고 탁구를 잘 치는 코치들도 기다리고 있다.

“훌륭한 코치들이 잘 지도해 줄 거예요. 그래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허전하겠죠?”

아빠는 꿈에 부푼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병준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소원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도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온 덕분에 저도, 병준이도 목표가 생겼어요. 돌이켜 보면 참 미안해요. 잘해주지 못했고, 드러내지도 못했고…. 이제 와서 자랑하면 아들이 잘됐으니까 그런다고 욕먹지 않을까요? 그래도 아빠가 시키는 대로 따라 준 병준이가 대견해요. 이제는 자랑하고 싶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사랑은 아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게 사랑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 아들 곁을 지켜 온 아빠는 몇 년 만의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춘천=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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