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조광래 감독 경질이 축구계 파벌 탓이라고?”

동아일보 입력 2011-12-18 10:15수정 2011-12-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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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개월 만에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놓게 된 조광래 감독. 스포츠동아
1년 5개월 만에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놓게 된 조광래 감독. 조 감독이 경질된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축구 전문가는 11월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약체 레바논에게 패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했고, 또 다른 전문가는 '만화축구'로 불렸던 조 감독이 추구한 축구 전술이 현실과는 맞지가 않았던 게 이유라고 말했다.

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스포츠평론가는 고질적인 축구계 파벌 싸움 때문에 조 감독이 경질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조광래 감독이 이끌었던 축구대표팀이 기대만큼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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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한 인터넷 매체에 '조광래 경질 부른 결정적인 순간들'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조 감독이 추구한 '만화축구'에 대해서는 현실과는 괴리된 이상으로 잠재적 불안감을 주었고 결국 '만화축구'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왕의 귀환'을 표방하며 51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준결승전에서 일본의 벽에 막혀 좌절한 게 뼈아팠으며, 이는 겉보기에 화려한 패싱 게임에 비하여 골 결정력 부족과 후반 체력 저하로 전술적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안컵에서 8강행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체력일 비축할 수 있었던 인도전에 무리하게 주전들을 투입한 것이나, 호주전에서 벌어진 유병수의 재 교체 해프닝과 항명 파문으로 리더십과 선수 관리 능력에서 상처를 남긴 것으로 지적했다.

또한 맞수 일본과의 3번의 대결에서 2무1패로 한번도 이기지 못한 것과 선수 차출을 두고 기술위원회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약체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맞춤형 전술의 부재, 제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 선수들의 무리한 기용, 비효율적인 움직임에 따른 후반 체력 저하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조광래 감독이 경질된 것과 관련해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는 경남 지역 축구팬들. 스포츠동아

조 감독이 1년 5개월 간 12승6무3패라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조 선두를 지켜온 것을 감안하면 이런 분석은 너무 비판적으로 잘못된 점만을 꼬집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조 감독 경질을 둘러싼 이런저런 견해 중에서는 가장 객관적인 분석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하면 "조광래 감독 경질은 축구계 파벌 탓"이라는 주장은 정말 터무니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필자가 아는 한 현재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축구계에서 소위 실세들이 학연이나 지연, 혈연으로 뭉쳐 '여당(與黨) 파벌'을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축구계에 '여당 파벌'이 없다고? 그렇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훌륭하게 치르고 난 뒤 '여당 파벌'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거스 히딩크라는 외국인 명장이 한국에 오기 전만해도 파벌을 이룬 일부 축구인들이 축구계 실세로 자리 잡고 각급 대표팀 감독을 독식하거나 축구 행정을 주무르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객관적이었던 이방인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를 4강에 올려놓으며 바람을 일으킨 뒤로는 구시대적인 파벌은 스스로 소멸됐다.

그렇다면 왜 이번에 또다시 파벌 이야기가 나왔을까. 원인의 일정 부분은 조광래 감독에게도 있다고 본다.

현역시절에는 스타플레이어였고, 프로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쌓아온 조 감독은 1990년대 중반부터는 구시대적인 행정을 일삼는 축구협회 집행부와 각을 세워온 소위 축구계 야당(野黨)의 대표 인사였기 때문이다.

조 감독과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축구인들 중 축구계의 부조리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축구계 야당 인사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런 조 감독이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후에는 축구협회 집행부 관계자들이나 기술위원 등 현재 한국축구 행정을 이끌어가는 선, 후배 축구인들과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한국축구의 선진화를 꿈꾸며 1년 5개월 간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조 감독은 기술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축구협회의 일방적인 해임 통고를 받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선수들과 어울려 같이 뛰고 공을 차며 훈련을 독려하는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다시 보기를 기대해 본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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