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33>종단개혁을 이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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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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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1994년 4월 10일 서울 조계사에서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다. 도법 스님이 대회의 집행위원장이었다. 불교신문 제공
1994년 4월 10일 서울 조계사에서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다. 도법 스님이 대회의 집행위원장이었다. 불교신문 제공
1994년은 종단사(史)에서 기념비적 해였다. 1962년 정화운동의 와중에 통합종단이 출범한 뒤 처음으로 자생적인 힘에 의한 종단 개혁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단 내부 개혁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권력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몸부림이었다.

지하 지선 청화 도법 학담 현응 지홍 영담 시현 정우 수경 스님….

1980년 법난 이후 종단을 쥐고 흔들던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소장 개혁그룹이었다. 당시 개혁을 주도했던 그룹은 현재까지 중책을 맡아 종단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종단의 수행 풍토가 흐려진 것은 정화운동의 부작용도 깔려 있다. 정화운동은 비구 300여 명이 7000여 명의 대처승에 맞서는 싸움이었다. 한마디로 당시에는 스님 되기가 너무 쉬웠다. 수행할 자질이 없는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과 수행도 하지 않은 채 가사장삼을 입었다. 정화운동 시점부터 수만 명이 출가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절반 이상 환속한 것으로 여겨진다. 종단도 이들을 위한 경제 문화적 복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사찰의 관할을 둘러싼 내부 분규가 있을 때면 생존권 차원의 극렬한 폭력사태로 치달은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1994년의 종단개혁을 주도한 그룹은 달랐다. 종단 안팎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개혁의지가 강하고 사회에서 체계적 교육을 받은 눈 밝은 이들이 속속 출가했기 때문이다.

1986년 9월 해인사에서 열린 승려대회는 이 같은 새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5공 치하였지만 사회민주화 흐름과 맞물려 스님 2000여 명이 참여해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천명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지선 청화 진관 법성 스님 등 221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한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가 출범했다. 1988년 대승불교승가회에 이어 1992년에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잇따라 창립됐다. 청화 지선 효림 스님 등이 참여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이후 종단개혁과 개혁회의 구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 11월 발족한 선우도량은 이 단체들과 달리 승풍(僧風) 진작과 바람직한 수행자 상 확립 등 승가결사체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사(結社)라는 한국 불교의 전통을 재해석해 승가운동으로 이끌어냈다. 도법 수경 현봉 혜담 현응 학담 스님 등 수좌 출신들과 개혁적 스님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수련결사를 통해 행자교육부터 깨달음, 청규, 수행론, 간화선, 종헌종법 등 불교의 전반적인 대안마련에 주력했다. 이처럼 종단 개혁의 힘은 한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지하 스님은 선방과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공부했다. 스님은 부드럽고 학구적인 성격에 행정력이 뛰어났고 1994년 출범한 개혁종단에서 설정 스님에 이어 종회의장을 맡았다.

선 수행과 경(經)에 밝은 학담 스님은 종헌종법 개정과 제정 과정에서 공이 많았다. 글 솜씨가 뛰어나 당시 성명서를 발표할 때 작업을 많이 했다.

서옹 스님의 상좌인 지선 스님은 1980년대부터 민중불교운동에 뛰어들었고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 선교(禪敎)에 두루 밝고, 자신의 논리에 대해 이론적 정리가 확실히 돼 있었다. 청화 스님은 민족자주통일에 관심이 많아 문익환, 계훈제 씨 그룹과 무척 가까웠다.

도법 스님은 알려진 대로 내 상좌다. 수행에 대한 의지와 집념이 출가 초기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강하다. 겉으로 부드럽지만 의지는 무쇠처럼 단단하다는 것이 수십 년간 그를 지켜본 내 판단이다.

명진 스님에 관해서는 조계사에서 열린 개혁회의 출범식이 기억이 난다. 내가 스님 2000여 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선언문을 낭독했다. 행사 중 명진 스님이 가사를 벗더니 갑자기 개혁이 안 되면 종단을 떠나겠다고 했다. 이미 의현 스님이 사퇴한 데다 개혁의 흐름이 도도한 상태였기에 난데없는 행동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불교환경운동을 이끌다 은둔에 들어간 수경 스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까운 수행자다. 수행력도 있고 귀도 열려 있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3보1배로 무릎이 모두 닳아버렸다. 몸을 잘 추슬러 종단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해 주기 바란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4>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1994년 출범한 개혁종단의 여러 조치와 그 안팎의 사연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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