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뇌성마비 여섯살 쌍둥이 자매 엄마 이주연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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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전국 재활병원 떠돌아… 다음엔 어디로 가야하죠?”

“잘했어, 정현아 정민아… 조금만 더 해보자” 28일 경기 부천시 부천재활요양병원에서 이주연 씨가 쌍둥이 장애아 정현(왼쪽) 정민이와 함께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이 씨는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시중을 들면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부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잘했어, 정현아 정민아… 조금만 더 해보자” 28일 경기 부천시 부천재활요양병원에서 이주연 씨가 쌍둥이 장애아 정현(왼쪽) 정민이와 함께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이 씨는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시중을 들면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부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장애아 엄마로 산다는 건 큰 괴로움이다. 몸이 고달파서가 아니다. 아픈 아이가 나의 배 속에서 나왔기에 죄책감을 떨칠 수 없어서다. 경북 김천에서 올라와 경기 부천시 부천재활요양병원(전 꾸러기병원)에 입원 중인 정현 정민(6)이 쌍둥이 자매의 엄마 이주연 씨(34)도 그랬다. 단 하루도 ‘모두 내 탓’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던 중에 임신했어요. 쌍둥이란 말에 더 열심히 일했어요. 둘을 키우려면 돈이 두 배로 들 것 같아서요. 지금은 임신 막바지까지 동동거리고 일한 거나 빨리 재활치료를 받지 않은 것 모두 후회스럽기만 하네요.” 정현이 1.01kg, 정민이 970g. 쌍둥이 자매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99일간 지냈다. 겨우 2kg이 된 아이 둘을 안고 병원을 나서면서 이 씨는 기뻐서 울었다. 잘 버텨주어서,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
처음에는 쌍둥이가 장애인 줄도 몰랐다. 우유 한 통 먹이는 데 한 시간이 걸리는 두 아이. 작게 태어난 만큼 속도가 느린 거라 생각했다. 크면서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만 늘었다.

다른 아이들은 뛰기 시작할 때, 정현이는 걷기 위해 발걸음만 떼면 넘어졌다. 정민이는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17개월이 됐을 무렵 대구의 큰 병원에 갔다.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뇌성마비라고요?”

처음에는 슬프지도 않았다. 이게 무슨 병일까,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저 어리둥절했다. 엄마에게 안기거나 유모차를 타고 다니니까 아픈 아이라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장애인이 되는 거구나.’

“금방 낫는 병이 아니라는 것,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양가 어른들은 쌍둥이만 보면 눈물부터 흘렸다. ‘아이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끝내 병원 가란 말을 꺼내지 못한 어른들이었다. 쌍둥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기만 했다. 이 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현 정민이 옆에는 엄마인 자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씨는 씩씩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현 정민이 장애인 맞아요.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낫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조곤조곤 말하던 이 씨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가끔은 엄마도 위로받고 싶다면서.

두 돌이 된 다음 날 대전의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진단을 받은 뒤 꼬박 8개월 만이다. 이처럼 치료가 늦어진 건 차례가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4년째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부천재활요양병원에는 9월에 입원했다. 대기 반 년 만에 차례가 돌아왔다. 재활 치료 때문에 경북 상주에서 대구, 대전을 거쳐 부천까지 온 셈이다. 이 병원도 11월까지만 입원할 수 있다. 그 후 입원을 신청한 병원에서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 씨의 고민이 깊다.

오전 7시, 어김없이 눈을 떴다. 치료 일정이 꽉 차 있는 쌍둥이를 7시 반에 깨웠다. 세수하고 밥 먹이고 나면 8시 반. 대근육을 발달시키는 물리치료와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작업치료를 연달아 받았다.

입원하기 전 오른쪽 발을 끌고 다니던 정민이는 7월 다리뼈를 교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 때문에 똑바로 걷기 위한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씨는 정현이보다 몸이 더 불편한 정민이의 치료 과정을 일일이 따라다녔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오전 11시 반, 자전거와 승마기구 치료를 받았다. 다리 근력을 키워주는 치료다. 지나가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아이를 보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걸을 수 있기를 엄마는 소망했다.

물리치료 한 차례 더 받고 나면 점심시간. 미역국 계란장조림 시래기무침 김치. 두 아이 식사가 나오자 엄마까지 셋이 오순도순 나눠 먹었다. 오후에도 언어치료 작업치료 물리치료가 차례로 이어졌다. 정민이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아델리치료. 코르셋처럼 몸에 딱 맞는 ‘아델리슈트’를 입고 걷기 운동을 했다. 몸이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도록 자세를 잡아주는 치료다.

“힘들다고 하지 않던 정민이가 ‘숨을 못 쉬겠어, 엄마 얼른 퇴원하자’ 그래요.”

그래도 언니처럼 걷고 싶다면서 참아냈다. 쌍둥이지만 걷기가 수월한 언니 정현이가 휠체어도 가져오며 동생 정민이를 보살폈다.

오늘 치료가 끝났다. 밥도 먹고 놀기도 하면서 잠을 잘 준비를 시작했다. 때로는 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다녀오기도 한다. 온종일 병실에 갇혀 ‘감옥살이’를 하는 젊은 엄마 이 씨에게 유일한 외출시간이다. 쌍둥이가 바람도 쐬고 잘 걷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먹고 싶은 게 많은 아이들 간식을 사기도 한다.

오후 10시경 쌍둥이가 잠이 들었다. 온전히 이 씨 혼자만의 시간이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눈은 말똥말똥, 잠은 오지 않는다. ‘다음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 벌써 네 번째 병원이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은데…. 병원조차 마음껏 다닐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잠을 청하다 일어나 빨래를 하고 엄마들끼리 하소연도 한다. 12시가 넘어서야 다시 잠을 청해본다.

3주 전 아빠가 입원 한 달 반 만에 병원에 왔다. 집 근처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자주 오던 다정한 아빠였다. 그러나 경북 김천에서 경기 부천까지 생계를 팽개치고 오가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해체되는 장애아 가정도 많다. 엄마와 장애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면 아빠나 다른 가족과는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치료비 부담은 덜하다. 장애아가 두 명이라 의료급여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에 따라 매달 80만∼160만 원의 병원비를 내야 한다. 이 씨는 언어치료 미술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비만 내고 있다.

“쌍둥이가 아프니까 하루 종일 같이 있어요. 안 그랬으면 돈 벌러 나갔을 걸요. 하나만 아팠다면 하나는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했을 거고요. 지금은 이렇게 살갑게 모여 지내요. 아니었다면 아이 어린시절을 오롯이 함께 보내는 기쁨을 모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인터뷰 내내 어렵게 질문을 이어가던 기자에게 이 씨가 한 말이다. 어려운 현실에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가 두 아이와 함께 찾아낸 보물. 그것은 바로 ‘행복’이었다.
▼ “우리 병원마저 재활치료 접으면 아이들 갈 곳 없어요” ▼

지난해 19세 이하 장애인은 모두 10만 명. 그러나 어린이재활병원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민간병원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기피하는 진료 분야이기 때문이다.

2008년 경기 부천시에 어린이재활병원인 꾸러기병원을 연 정순탁 원장(39·사진). 처음에는 소아병상만 100병상을 운영했다. 1년 뒤부터 성인병상을 늘리기 시작해 지금은 성인병상(120병상)이 소아병상(80병상)보다 많다. 올해 6월 아예 부천재활요양병원으로 이름도 바꿨다. 성인환자를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기본적으로는 건강보험 수가의 문제죠. 소아환자가 많을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니까요.”

소아환자는 아직 관절 척추가 유연해 통증이 적다. 물리치료보다 운동치료에 시간을 쏟는다. 성인보다 치료사는 더 필요하고 의료기기는 덜 사용한다. 병원으로서는 수입은 그대로인데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수가는 성인과 소아가 같다.

외래 진료를 받으면 하루 한 번만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운동치료와 작업치료를 한꺼번에 받고 싶다면 입원을 해야 한다. 문제는 입원병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 운동치료실, 작업치료실은 공간이 넉넉해야 한다. 이 공간을 모두 마련하려면 병원 측의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재활치료는 근육과 뼈가 굳지 않은 7, 8세 이전에 집중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재활병원이 부족해 정현 정민 자매처럼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천재활요양병원만 해도 낮 병동(하루 6시간 이상 치료를 받으면 입원으로 인정하는 제도)은 7개월, 입원 병동은 3개월가량 기다려야 한다. 현재 30명의 아이가 대기하고 있다. 정 원장은 “우리 병원이 소아재활을 접는다고 하면 아이들이 당장 갈 곳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학병원은 기다리는 환자가 더 많다. 자칫 치료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치료환경도 썩 좋지 않다. 운동장같이 넓은 대학병원에서 주차하고 장애아를 업고 다니며 2, 3분 진료받는 일 자체가 버겁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려면 집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는 것이 좋다.

정 원장은 “대학병원에서는 아이가 이상하다, 검사해 보니 뇌성마비다, 이런 이야기를 5분 안에 모두 들어야 한다. 엄마와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장애 진단을 내릴 때도 부모가 받아들일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려고 한다.

재활병원은 어떻게 해야 늘어날까. 정 원장은 “수가를 올리는 것이 시급하지만 당장 어렵다면 바우처 지원이라도 제대로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언어나 미술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장애치료 바우처가 지급되고는 있지만 기간도 짧고 지자체별로 들쑥날쑥하다는 것.

그에게 병상 수를 줄여가면서도 소아재활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장애아 치료도 보람이 크지만 사실 엄마 때문이기도 합니다. 병원 문을 열었을 당시 병실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세상에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도 어머님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냅니다’란 글귀를 붙여두었습니다. 꿋꿋한 엄마들을 보며 받은 감동이 소아재활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힘입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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