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홍권희]자영업 문 닫으면 중산층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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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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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중산층의 두께는 선거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중산층은 부유층과 빈곤층, 좌나 우 가운데 어느 한쪽이 집권해 나머지 한쪽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서울의 중산층이 줄어든 상태에서 치러진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우파 후보가 득표에 더 고생했을 것이다. 경제 전체로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중산층이 위축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갈등이 커진다. 2000년 이후 도심 시위가 잦아진 것도 자기절제와 책임감 등 시민의식이 높고 전체주의를 꺼리는 중산층의 위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중산층’ 국민 30%도 안 돼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은 1990년대 전체 가구의 75%선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67%로 줄었다. 외환위기를 치르면서 중산층의 탈락이 늘어났다. 줄긴 했어도 전체의 3분의 2가 중산층이라면 다행이지만 삼성경제연구소가 통계청의 통계를 가공해 산출한 2009년 중산층 규모는 55%에 그쳤다.

중산층 의식은 더 낮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가구의 70∼80%가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겼지만 2007년 조사에서는 28%에 불과했다. 대신 스스로 빈곤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늘었다. 지난달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남은영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산층 귀속의식의 감소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실직자들이 자영업에 진입했으나 벌이가 부실했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영업 일자리는 외환위기 때, 카드 대란으로 소비가 침체된 2003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0년 등 4년간 70만 개 가까이가 사라졌다. 10여 년 사이에 자영업자들의 중산층 기둥 역할도 위축됐다. 노동자들은 노조나 정치권을 통해 힘이라도 써봤지만 조직도 없는 자영업자들은 그것도 못 해 정부나 정치권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18일 서울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음식점 주인 7만5000명이 ‘솥뚜껑 시위’를 벌였다. 주최 측인 한국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1억여 원을 내고 경기장을 빌렸고 회원들에게 ‘식당 문을 닫고 오지는 말라’고 말렸다”고 말했다. 요구사항도 ‘카드 수수료를 내려달라’ ‘외국인 근로자를 더 채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등 현실적인 서너 가지에 불과했다. 도심 차도를 점령하고 ‘정권’부터 때리는 일부 노조와는 딴판이다. 중산층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지가 읽힌다.

자영업자 수는 2002년 607만 명을 최고로 작년 547만 명까지 줄었다. 이들이 폐업 후에 갈 곳은 거의 없다. 서재만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무직자-임시근로자-자영업자의 저소득 악순환 고리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가혹하지만 자영업자는 앞으로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창업 준비기간이 짧고 전문성이 떨어지며 전체의 80%가 생계형이어서 불경기에 무기력한 퇴출예비군이 아직도 많다. 최근엔 50대 이상의 영세 자영 창업이 부쩍 늘어 도산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현장감 있는 자영업 대책 안 보여

자영업에 ‘질서 있는 구조조정’ 정책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때처럼 준비 없는 구조조정은 피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다. 정부의 상생, 공생으로는 대기업의 1차 납품업체나 백화점 입주업체 같은 번듯한 중소 중견기업만 혜택을 입는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5월 31일 ‘영세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아 자영업자에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고용보험을 적용할 길을 열었다. 논란도 있었지만 자영업자를 노동 및 복지 정책의 대상으로 등장시킨 의미가 크다. 현 정부는 새 대책을 만들려하지 말고 ‘5·31 대책’을 보완 실행하는 것만 잘 해도 된다. 자영업자들은 우리 사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중산층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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