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7광구’ 혹평,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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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도 영혼도 없는 캐릭터들
‘재미’만 좇다 재미마저 놓치다

국내 최초의 3D 블록버스터 영화 ‘7광구’.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냉담하다. CJ E&M 제공
국내 최초의 3D 블록버스터 영화 ‘7광구’.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냉담하다. CJ E&M 제공
MC 강호동은 수년 전만 해도 ‘국민 MC’ 소리를 듣는 유재석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대는 거 싫어하는 한국인들로선 드세고 ‘비호감’ 이미지를 풍기는 강호동보단 ‘겸손의 리더십’을 구사하는 유재석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강호동 진행의 ‘1박2일’이나 ‘스타킹’ 등은 유재석의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을 시청률이나 시청자 평가 면에서 대부분 앞지르고 있다.

이런 역전극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그건 유재석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강호동이 잘해서다. 강호동의 예능철학은 ‘가치를 통해 재미를 생산하자’는 쪽인 듯하다. ‘1박2일’이 인기를 끄는 것도 결국은 ‘우리 산하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 알린다’는 핵심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고, ‘스타킹’이 주목 받는 이유도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특별한 재능을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와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가치를 통해 재미에 다가가는 강호동의 태도는 ‘재미를 위한 재미’를 추구하기 시작한 유재석의 한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강호동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4일 개봉된 ‘7광구’를 보면서 ‘이 영화가 강호동을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적잖은 영화평론가와 기자들은 7광구에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고 혹평하던데, 이 영화는 성긴 스토리보다 더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웅변하는 듯한 천연덕스러운 태도다.

물론 7광구는 예술영화가 아니라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다. 재미가 없으면 그 자체가 죄이며, 큰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7광구의 문제는, 바로 그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7광구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포악한 괴물마저도 안쓰럽기 짝이 없다. 석유시추선 대원들에겐 어떤 내면도 영혼도 없는 것만 같다. 여주인공 하지원은 시종일관 “무조건 땅을 파 석유를 발견해야 한다”고 악다구니만 쓴다. 하지원을 좋아하는 오지호는 뇌(腦)도 없어 보일 만큼 오로지 그녀만 쫓아다닌다. 뭔가 깊은 사연을 가진 핵심 인물인 베테랑 캡틴 안성기에겐 사연만큼의 절실함이 결핍되어 있다.

7광구엔 도대체 ‘개연성’이란 게 없다. 스스로 완전 연소되는 체질적 특성을 가진 괴물을 제거해 버리겠다며 안성기가 비장의 무기로 빼어든 것이 화염방사기라니…. 이것은 사자에게 얼룩말 다리를 던져주면서 “죽어!” 하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난센스다. 결국은 그저 불타는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설정일 뿐. 심해 생물체에서 태동한 괴물이 육지 사자 울음소리를 내는 것도 이해가 안 될뿐더러,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공격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숙주 삼아 그 안에 알을 까려고 하는 것인지, 괴물의 지능과 습성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영화는 일언반구 없다. 왜냐? 그냥 재밌으면 되니까. 괴물은 언제 어디서고 ‘놀랐지?’ 하고 불쑥 나타나 설치다가 가까스로 제거되면 그뿐이다.

7광구엔 중요한 ‘가치’의 포인트가 있었다. 문명발전을 위한 화석연료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인간의 탐욕, 그것이 부른 재앙은 괴물이라는 메타포(은유)로 충분히 형상화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재미’를 추구하며 성공한 괴수영화들의 인상적인 설정만을 여기저기 끌어와 레고처럼 끼워 맞춘 듯한 이 영화의 태도는 이런 소중한 서브텍스트를 무거운 짐처럼 여기며 훌떡 벗어던져 버렸다.

물론 재밌으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재미는 언제나 깊은 가치에서 잉태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그 깐죽거리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꽤 훌륭한 괴수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재미와 더불어 가치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감독의 진정성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재능 넘치는 감독 김지훈과 더욱 재능 넘치는 제작자 윤제균이 7광구를 통해 재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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