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거품 고학력’ 재앙 부를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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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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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한국의 대학교육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저출산 현상으로 상당수 대학이 운영난에 봉착할 위기를 맞고 있다. 내년 2월 고등학교 문을 나서는 학생은 64만 명이지만 2020년에는 40만 명으로 감소한다. 4년제 대학의 전체 입학 정원이 32만 명이므로 2020년이 되면 누구나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지방대 등 입시생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대학들은 서서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 없는 대학졸업자 양산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일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한국 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는 58개국 가운데 46위에 그쳤다. 취약한 대학 수준은 개선될 기미조차 없다. 서울대 KAIST 정도가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0위 안팎에서 오락가락할 뿐 새롭게 부상하는 대학은 출현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 중국의 명문 칭화대의 100주년 기념식장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총리,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부총리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집결했다. 세계적인 대학을 갖고 싶은 중국 지도자들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칭화대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인기 위주의 입시정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을 뿐 대학 수준을 높이는 일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의 입에서도 대학경쟁력이란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 대학교육이 풀어야 할 난제(難題) 중의 난제는 학력 인플레다. 지난해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수치를 발표했다. 2008년 기준으로 25∼34세 연령층에서 대학졸업자 비율이 58%를 차지해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은 고학력 젊은 세대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됐다. 교육열이 만들어낸 빛나는 훈장 같은 것이지만 마냥 반가워할 일은 아니다. 고학력자를 수용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면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18만8000명 가운데 취업을 한 사람은 6만6000명에 머물렀다. 4만1000명은 실업 상태이며 8만1000명은 취업 준비 중이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비경제활동 인구였다. 청년실업이 확산되면 미취업 대졸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부모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단순 직종에선 인력난이 심각하다. 학력에 걸맞지 않은 일자리를 택한 대졸자들의 직업 만족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고조될 것이다. ‘고학력 재앙’이다. 대학에 가겠다는 사람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직업 선택의 물줄기를 어떻게 바로잡을지 사회 전체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정치논리로 더 악화시키진 말라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은 대학교육의 활로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대학 구조조정, 경쟁력 강화, 학력 인플레 등 당면 과제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반값 등록금 정책은 가뜩이나 복잡한 문제를 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등록금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고 정부 예산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거나, 대학이 등록금을 자체적으로 대폭 인하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대학 개혁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정부가 장학금을 직접 지급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면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는 부실 대학을 국민 세금으로 연명시켜 주게 된다. 장학금을 주는 만큼 입학생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스스로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게 할 경우 대학경쟁력 향상이라는 과제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대학들은 등록금이 줄어든 만큼 최대한 적게 지출하는 체제로 갈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유럽은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펴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보는 단견이다. 프랑스의 경우 무상에 가까운 등록금만 받고 있으나 대학생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교육비용은 중학생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도 적다. 싼값으로 교육시키는 만큼 대학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유럽 대학들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프랑스에서도 엘리트 양성 대학인 사립 그랑제콜들은 연간 2만 유로(약 3000만 원)의 비싼 등록금을 받는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초래할 치명적인 부작용은 역시 고학력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대학경쟁력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졸자를 지금보다 더 양산하게 되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조차 힘들다. 대학은 국가의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엔진 같은 곳이다. 정치인들이 대학 수준을 높이는 일에 기여는 못할망정 근시안적 논리로 망가뜨리는 일만은 삼갔으면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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