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교육계 CEO 초대석/최용준 천재교육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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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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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바탕으로 엑설런스를 추구하는 삶을 사세요”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은 1981년 수학기본서 ‘해법수학’ 집필을 시작으로 현재 연간 매출 2100억 원 규모의 교육 출판기업을 일궜다. 최 회장은 “‘대도무문(大道舞文·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 정신으로 기업을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은 1981년 수학기본서 ‘해법수학’ 집필을 시작으로 현재 연간 매출 2100억 원 규모의 교육 출판기업을 일궜다. 최 회장은 “‘대도무문(大道舞文·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 정신으로 기업을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2003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교재를 만드는 한 출판사에 사건이 터졌다. 수능 대비 수학교재에서 답과 직결된 오류가 20여 건 발견된 것.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한 강사는 틀린 풀이과정대로 가르치다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했다며 성을 냈다. 당시 출판사는 집필자 교정, 편집위원 교정, 외부 전문가 교정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교정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사건은 최종 교정본을 제작부서로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전문 교정자가 발견한 오류를 담당자가 최종 교재제작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 어떤 간부는 “처음 있는 일이니 곧 잊혀질 것”이라며 넘어가자고 했다.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독자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작두질해야 한다”며 시중에 깔린 11만 권을 전격 회수했다. 회수된 책은 파지가 됐다.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학에서 실패가 성공보다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는 정설은 옳았다. 이제는 연간 3500여 종의 책을 발간하고 있지만 문제가 될 만한 오류의 발생률은 ‘제로(0)’에 가까워졌다. 교육출판기업 ㈜천재교육의 이야기다.》
천재교육이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을 맞아 특별히 계획한 행사는 없느냐는 질문에 최용준 회장(68)은 “환갑 때도 환갑잔치를 하지 않았다. 곧 칠순이지만 스스로는 20, 30대라고 생각하며 나이를 잊고 산다”면서 “회사도 매년 창립 첫해처럼 혹은 30주년, 100주년처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천재교육 본사에서 최 회장을 만나 지난 30년간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
○ “엄마들이 제일 까다롭더라”

최 회장의 집무실에는 고급 만년필 대신 수십 자루의 빨간 색연필과 까만 사인펜이 있다. 회의 테이블에는 최 회장의 검토를 기다리는 출간 전 교재 수십 권이 쌓여 있다. 초등 3, 4학년 과학 참고서부터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까지 다양하다.

최 회장은 요즘도 교재 집필을 한다. 오전 3시 40분에 일어나 오전 5시까지 등산을 하고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6시. 이때부터 집필을 시작한다. 30분쯤 지나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쓸 내용만 생각난다고. 평소 잘 풀리지 않던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된다. 최 회장은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 조정래 씨는 글을 쓸 때 몰입의 경지에 오르면 손에서 불꽃이 ‘팍팍’ 튄다던데 나도 집필할 땐 종이에 손만 갖다대도 전기가 오른다”고 말했다.

천재교육이라고 하면 과거 ‘수학의 정석’과 양대 산맥을 이룬 ‘해법수학’을 기억하는 학부모나 학생이 많다. 해법수학이 바로 최 회장이 집필한 첫 교재다. 기본서로서의 해법수학은 2002년을 마지막으로 절판되었지만, ‘해법’이라는 이름은 천재교육의 핵심 브랜드로 남았다.

이밖에도 1986년 출간 후 현재까지 5000만 권이 팔리면서 초등생 대표교재로 자리매김한 ‘우등생 해법시리즈’를 비롯해 월간 우등생평가(2300만 권), 월간 해법수학(2100만 권), 중등교재 체크체크(1400만 권) 등 히트작이 즐비하다.

5차 교육과정부터는 교과서를 발간했다. 천재교육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초중고교의 2011학년도 교과서 주문부수를 집계한 결과 검정교과서 주문부수 1위를 기록했다. 올해 총 1230여만 권의 천재교육 교과서가 일선학교에 보급된다.

30년 전 교육출판시장에 진입할 당시 상황은 열악했다. 당시 출판시장엔 상위 2개사가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막대했다. 최 회장이 “초등시장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학생들이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고교시장은 1, 2년이면 승부가 나고, 중학교시장도 3, 4년이면 시장 반응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초등시장은 달랐다. 교재를 선택하는 건 ‘엄마’들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까다로웠다. 변하지 않는 책은 거들떠도 안 봤다. 당시 출판회사들은 교과서가 개편되는 7, 8년에 한두 번 개정판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매년, 독자의 요구가 있을 때는 매학기 완전히 새로운 교재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 회장은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의 책꽂이에 꽂힌 문제집을 산다”면서 “매년 다른 문제로 교재를 구성했기 때문에 시험에 새로운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참고하기에도 좋았다”고 말했다.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자 책은 빠른 속도로 팔렸다.

최 회장은 교재의 디자인도 중시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은 눈에 띄는 표지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다. 학생이 물리공식을 이해하기 가장 적절한 자리에 그래프와 그림이 있는 것, 조선시대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바로 ‘잘된’ 디자인이다. 최 회장은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데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것이 참고서의 역할”이라고 했다.


○ 1등이 30명인 세상을 꿈꾼다


창의적 교육, 서술형 평가, 말하기·토론식 수업의 중요성까지 최 회장은 최근 교육 트렌드와 이슈를 정확히 짚었다. 서술형 평가를 대비해 교재에 주관식, 생활 속 문제를 포함한 서술형 문제를 늘렸다.

천재교육 계열사인 ㈜천재문화가 운영하는 ‘해법수학교실’의 한 반 정원 12명이 토론식 수업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 2004년 뉴질랜드 교육시찰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의 교육현장을 보고 싶다는 시찰단에게 한 교육대학 교수가 해법수학교실을 추천했다. 시찰단은 9단계 수준별 교재를 활용해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돌아갔다. 최 회장은 ‘천재교육을 경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이때를 꼽았다.

그는 ‘창의적 교육’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창의력과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것. 과거 한 반 30명 중 공부 잘하는 1등이 단 한 명이었다면, 앞으로는 소질과 적성이 모두 다른 30명이 모두 각 분야의 1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 회장은 “독서 감상문을 잘 쓰는 학생, 토론을 잘하는 학생, 수학을 잘 풀고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 모두 1등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교실현장에서 창의력과 개성을 존중하는 감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책만 보고 달려온 30년. 최 회장에게는 어떤 계획이 있을까. 그는 1981년 천재교육을 설립할 당시 회사가 기반을 잡으면 수익의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1982년엔 고향인 전남 진도에 공립고교 용지를 기부하고 1986년부터 모교인 서울대 사범대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사회에 환원한 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6억 원에 이른다.

최 회장은 대학 설립 계획도 조심스레 밝혔다. 특히 세계적인 디자인 인재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 창의적 교육을 하는 대학을 세우고 싶다는 것.

아홉 살 손녀와 네 살 손자가 있다는 최 회장은 할아버지로서 어린이, 청소년이 다음 몇 가지를 꼭 기억하며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항상 ‘엑설런스(excellence·탁월함)’를 추구하세요. 엑설런스란 지향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마세요. 친구를 많이 사귀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세요.”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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