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정산]사찰음식 대중화가 달갑지 않은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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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가 삼복에 절에서 먹는 보양식을 취재하러 필자를 찾았다. “사찰음식에는 보양식이 없다”면서 절에서 여름에 주로 먹는 음식을 알려줘 보냈다. 승려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진리 탐구와 중생 구제의 길을 찾아 입산을 결심한다. 산에서 내 몸에 좋은 음식을 탐하고, 내 몸에 이로운 음식을 먹는다면 이율배반이다. 사찰음식은 수행식이자 고행의 음식이며, 따라서 쓰고 거칠며 간이 덜 된 음식이다. 세칭 ‘보양식’의 정의에는 맞지 않는다.

최근 사찰음식에 관심이 높다. 경제성장으로 사는 형편이 나아진 데 따라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다.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이 운동 부족과 과도한 영양 섭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올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찰음식에서 주로 사용하는 도라지 버섯 취나물 등 산나물의 효능과 영양소가 밝혀지고, 갖가지 양념을 최대한 배제하고 재료 자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는 조리법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과잉 영양의 시대에는 자연에서 나는 재료에 최소한의 양념으로, 재료가 지닌 원래의 맛과 특성을 그대로 살려 만든 사찰음식을 몸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는 것이 몸에 가장 이롭다. 다시 말하면 사찰음식에는 보양식이 없지만, 사찰음식을 먹으면 저절로 보양을 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여기서 보양식이란 달고 맵고 짠 양념으로 맛을 더한 음식이 아니다. 자연의 재료가 지닌 쓰고 싱겁고 떫은맛을 최대한 살린 음식을 최소한만 먹는 일이다.

고행의 음식, 근본정신 간 데 없고

사찰음식을 보급하겠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효용성을 떠드는 점은 우려스럽다. 근본적인 정신을 망각한 채 심산유곡의 진기한 약재로 몸에 이로운 재료만 선별해서 만든 음식인 양 치장하고 떠들어서는 곤란하다. 사찰음식에 사용되는 재료의 효용성을 밝히고 널리 알리는 일은 의사나 영양학자의 몫이다. 사찰음식을 보급하고 배우는 사람은 근본정신을 새기고 음식 본연의 소박한 맛과 멋을 계승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절에 처음 들어가면 행자생활을 거친다. 나는 사찰음식에 매료돼 자청해서 6년간 행자생활을 했다. 행자는 역할에 따라 나물을 만드는 채공과 죽이나 밥을 짓는 공양주, 국을 끓이는 갱두로 나뉜다. 이들을 가르치고 주관하는 스님을 별좌, 그 위에서 절간 살림을 도맡아 하는 스님을 원주라 부른다. 별좌는 행자 중에서 음식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계승하고, 별좌를 거쳐 원주가 된다. 이렇게 해서 한 절의 음식문화가 끊이지 않고 후대로 내려온다. 행자생활을 마치면 스님이 되기 위한 계를 받는다. 이때 처음 받는 책이 ‘초발심자격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배가 고프거든 산에 있는 나무껍질과 풀잎, 나무열매를 따 먹어라. 그것도 배불리 먹지 말고, 주린 배를 위로하라. 너희가 입을 옷은 소나무 밑에 자라는 송락이란 풀을 엮어서 옷을 지어 입어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바위굴이 있는데 그 바위굴을 거처로 삼아라. 하늘을 나는 기러기로 친구를 삼고, 목이 마르면 흐르는 개울에서 물을 마시되 벌컥벌컥 마시지 말고 목만 축여라. 너희가 절을 하는 바닥이 얼음일지라도 절대 불을 피울 생각은 마라.”

여기에 사찰음식의 근본정신이 있다. 불에 익혀 먹는 일만으로도 고맙고 황송한 일로 여긴다. 밥과 국, 3가지 반찬의 발우공양은 높은 스님부터 어린 동자승까지 같은 자리, 같은 그릇에 나눠 먹는 행위다. 먹을 때도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한 사람을 축원하고, 중생 구제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염불을 왼다. 마지막으로 몇 톨의 밥알과 몇 조각의 반찬을 헌식하는 곳에 모아두고 나서야 밥을 먹는다. 먹은 후에는 바루를 물로 헹구어 가라앉은 찌꺼기와 헹군 물까지 마신다. 헌식한 음식은 절 근처 개울의 물이 흐르는 돌 위에 올려놓아 주린 산짐승이나 물짐승, 날짐승을 위로한다.

화려한 치장 ‘보양식’으로 둔갑

사찰음식이 가진 가장 중요한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음식의 겉모습 다듬기에 치중하는 움직임이 있다. 사찰음식에 치자와 오미자, 백년초 등 화려한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것도 모자라서 중국음식을 모방한 버섯탕수, 팔보채, 누룽지탕이 등장했다. 일본음식인 생선초밥을 흉내 낸 더덕초밥에 오이초밥, 심지어는 산삼말이까지 등장하고 이것이 진기한 사찰음식의 정수처럼 소개된다. 새삼 염려스럽다.

사찰음식은 세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종교음식으로 한국 일본 중국 정도에서만 명맥이 유지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불교의 번성기였던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큰 절이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궁중음식이나 속가의 음식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재료의 선택과 조리법이 확립되고 전통이 대를 이어 계승됐다.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고행과 구도, 평등과 중생 구제의 정신이 담긴 사찰음식의 근본철학을 깊이 새겨야 한다.

정산(김연식) 동산불교대 사찰요리문화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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