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풍 사건’은 학교 체벌을 이슈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체벌 전면 금지’ 카드를 꺼냈다. 경기도교육청은 10월 초 전국 최초로 체벌 금지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하지만 충분한 대안 없이 체벌 금지가 시행되면서 ‘따뜻한’ 사제(師弟)관계 대신 “생활지도를 포기하고 싶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등 상상하기 힘든 ‘사제 충돌’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 “우리 어떡하죠”라는 교사들
이달 17일 강원 강릉시 C중학교에서는 한 남학생(16)이 지각한 것을 나무라던 여교사(47)를 밀치고 목을 조르며 침을 뱉은 뒤 달아났다. 학교 측은 조만간 징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비슷한 사건은 경기 인천 등지에서도 이어졌다. 과거에는 1년에 한두 번 있을 정도의 사건이 최근 2, 3개월 사이에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사건이 터진 학교마다 학생지도 강화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속으로는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C중학교 관계자는 “(이번 일로) 해당 교사를 포함해 모든 교사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올 10월 여자친구 문제로 난동을 부린 남학생 때문에 112 신고까지 했던 경기 성남시 D중학교 관계자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며 “상처 입은 교사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직 교사로 보이는 한 누리꾼(ID 인권존중)은 경기도교육청 교직원게시판에 논란이 되고 있는 ‘여교사 희롱 동영상’ 기사와 함께 “우리 이제 어떡하죠”라는 글을 남겨 허탈한 심경을 나타냈다.
○ 체벌 대안은 아직도 ‘준비 중’
교권침해 사례는 특히 의무교육이어서 퇴학이나 정학 처분 같은 처벌 수단이 없는 중학교에서 많이 불거졌다. 고교에서는 퇴학이나 정학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경기지역의 경우 중학생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학생지도 매뉴얼을 내놓았지만 비현실적이고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학생은 ‘성찰교실’로 보낸다지만 학생들은 “성찰교실 가서 놀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서울지역 학생 9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체벌 전면 금지에 찬성하는 학생은 41.1%, 반대는 35.6%로 나타났다. 부실한 대체프로그램 탓에 “체벌 전면 금지 이전이 더 좋다”는 응답이 35.0%였다. 반대로 “대체벌이 시행된 지금이 더 좋다”는 응답은 24.4%에 그쳤다.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경기도교육청도 11월 체벌 대체프로그램을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아직 최종안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교총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법’(교권보호법)을 추진 중이다. 이미 전국 20만여 명의 교사가 입법 청원에 서명했다. 한국교총은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교실 위기를 넘어 교실 붕괴가 우려된다”며 “교권확립과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교권보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동영상=여교사에게 성희롱, `막장 중학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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