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통해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20·끝>동아방송, 방송계의 선례로 남다

동아일보 입력 2010-12-13 03:00수정 2010-1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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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오락-음악 ‘파격 제작’의 연속… 대부분 “한국방송 최초” 《‘새 의욕, 새 감각, 새 아이디어.’ 동아방송의 출발정신은 ‘새로움’이었다. 1963년 4월 25일 개국한 동아방송은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다른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을 답습하기보다 정형화된 틀을 깬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동아방송이 만든 프로그램 대부분에는 ‘한국 방송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1978∼80년 동아방송이 실시한 교통안전 캠페인 ‘거북이 대작전’의 일환으로 횡단보도 질서 바로잡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연예인들.
개국 프로그램인 ‘여명 80년’은 국내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누리를 뒤덮은 어둠을 헤치고…’라는 주제가에 이어 ‘여명 80년’이라는 타이틀 멘트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당시 애정통속극이 주종을 이루던 드라마 판도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매일 밤 10시 15분부터 35분까지 방송한 ‘여명 80년’은 1884년 갑신정변부터 80여 년에 걸친 한국 근대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극화했고 실제 인물들의 녹음 증언도 삽입했다. 동아방송이 우리나라 정치 외교사를 정면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동아일보의 정론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저한 자료수집과 역사고증으로 유명했던 이 프로그램은 1964년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6권 분량의 실록소설로 만들어져 그해 한국일보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쾌한 응접실’은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추구했던 동아방송 오락 프로그램의 대표주자였다. 단골손님 얘기손님 노래손님이 출연해 주어진 화제를 놓고 유머와 풍자를 섞어 얘기를 주고받는 포맷으로 국내 TV 토크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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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중 한 명인 양주동 박사가 얘기를 끝내면서 썼던 ‘이하 생략’ ‘그만’이라는 단어는 곧바로 장안의 유행어가 됐으며 자신을 ‘국보’라고 소개할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진행을 맡았던 전영우 전 동아방송 아나운서 담당 부국장(76)은 “유쾌한 응접실이 개국부터 폐국 때까지 18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억지스러운 코미디나 웃음을 유발하지 않고 초대손님 간에 상대방의 인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넘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탑튠쇼’는 국내 디스크자키(DJ) 시대를 연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다른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은 아나운서가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프로듀서가 조정실에서 음악을 믹싱하는 방식이었다. 1964년부터 탑튠쇼를 담당한 최동욱 프로듀서는 믹싱과 진행을 겸하고 해박한 음악지식을 곁들여 해설까지 하는 1인 3역을 소화했다. 당시 국내 젊은 음악팬 사이에서는 탑튠쇼에서 매주 발표하는 미국 ‘빌보드’ 순위를 알고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동아방송은 탑튠쇼의 인기에 힘입어 ‘3시의 다이얼’ ‘0시의 다이얼’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생방송으로 진행한 이들 프로그램에는 청취자가 전화로 신청한 음악을 곧바로 틀어주는 ‘리퀘스트 코너’가 마련됐다. 당시 동아방송은 2000장이 넘는 풍부한 외국 음반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있었기에 전화 리퀘스트 코너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른 방송사에서 죽음의 시간으로 통하며 재방송으로 채우던 오후 3시대에 등장한 ‘3시의 다이얼’은 동아방송 오후 프로그램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청취율 1위에 올라서는 이변을 낳았다. 탑튠쇼, 3시의 다이얼 등을 진행했던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74)는 “당시 최창봉 방송부장에게 DJ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니까 두 말 않고 ‘그래, 한번 해봐’라며 흔쾌히 밀어줬다”며 “동아방송의 저력은 다른 방송사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과감히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방송 개국부터 폐국까지 18년 간 장수했던 대표 오락프로그램 ‘유쾌한 응접실’의 10주년 기념 방송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방송은 개국 1년을 갓 넘긴 1964년 5월 ‘걸어서 가자’ 캠페인을 전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방송 캠페인으로 교통체증을 개선하기 위해 걷기운동을 적극 권장하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정규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걷기운동의 장점을 홍보하는 짧은 스파트 방송이 수시로 전파를 탔다. 동아방송은 ‘걸어서 가자’에 이어 1965년 10월 ‘닐리리’ 캠페인으로 전통음악 발굴과 보급에 나섰다. 1년 6개월 동안 전개된 닐리리 캠페인에서는 전통가락을 발굴한 후 현대감각에 맞게 작곡 편곡해 ‘닐리리도 흥겹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했다.

‘결핵퇴치’ ‘국어사랑’ ‘불우이웃돕기’ 등으로 꾸준히 이어진 동아방송의 캠페인 역량은 1978∼80년 ‘거북이 대작전’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거북이 대작전은 교통문제 심층진단과 함께 교통법규 퀴즈, 교통안전 표어 모집, 교통통신원 선발, 모범운전사 선정 등의 행사를 펼쳐 교통안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캠페인 기간에 총 5회에 걸쳐 하루 10시간 교통안전 특집 생방송을 마련했다. 동아방송은 1980년 11월 12일 폐방을 18일 앞둔 시점에서 마지막 특집 생방송을 의연하게 진행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동아방송 국장을 지낸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이사장(85)은 “동아방송은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면서 방송 프로그램을 살아 있는 지적 창조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열성적으로 일했던 곳”이라며 “우리나라 전파언론의 큰 획을 그은 방송이었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1966년 중계차 투입 마라톤 풀코스 국내 첫 생중계 ▼
송신기 등 첨단설비 갖춰


동아방송은 개국 3년 만인 1966년 제37회 동아마라톤을 풀코스 생중계하며 방송 역량을 과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방송이 1960, 70년대 한국 방송의 새로운 모델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아방송은 1963년 개국 때 RCA, 유니버설, 암펙스 등 세계적인 방송설비 회사에서 송신기, 녹음기, FM송수신기, 발전기 등을 개별적으로 들여왔다. 이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춰 전파매체 운영 경험이 없다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동아방송이 개국 1년 만에 31.3% 청취율을 기록하며 전국 방송망을 가진 KBS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서자 전국 각지의 청취자들로부터 출력 증강 요구가 쇄도했다. 동아방송이 개국 당시 체신부에서 허가받은 10kW 출력으로는 서울 경기를 비롯해 충청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 청취가 가능했다. 동아방송은 정부가 1968년 3월 50kW 출력 증강을 허가하자 4월에 곧바로 50kW 전파를 송출했다. 1964년부터 이미 자체기술로 50kW 송신기를 제작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아방송은 또 1966년 국내 최초로 제37회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 실황을 생중계하며 앞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마라톤 풀코스 실황 중계를 위해 서울 남산과 인천자유공원(당시 만국공원)에 중계소를 설치하고 고성능 중계차 2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이 밖에 동아방송은 1964년 국내 방송사 중 처음으로 서울 명동 미도파백화점에 위성 스튜디오를 개설하기도 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기고]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
“읽는 뉴스 아닌 보도하는 뉴스… 새 패러다임 도입”


동아방송은 1960년 4·19혁명과 함께 민주주의의 산물로 태어났지만 1963년 박정희 군사정부 아래서 문을 열게 됐다. 순탄치 않은 앞날이 예상되는 개국이었다. ‘앵무새 사건’ 등 정치탄압을 겪으면서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동아방송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방송통폐합 조치로 강제 폐방됐다.

1960년대는 방송을 언론매체로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국영방송은 정부의 정책홍보나 계몽방송을 하고 있었고, 민영방송은 오락과 흥행 프로그램 편성이 기본이었다. 절대권력에 눌려 자유언론 활동이 어렵던 시절 동아방송은 스스로 언론 매체임을 선언하고 나섰다.

한국의 방송은 오랫동안 아나운서가 ‘읽는 뉴스’를 진행해 왔지만 동아방송은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전문 언론인이 직접 진행하는 ‘보도하는 뉴스’를 시작했다. 동아일보 언론인이 참여하는 새로운 방송 보도의 패러다임을 한국에 처음 도입했다. 뉴스맨이 진행하는 동아방송의 뉴스는 사건 현장의 냄새가 나는 ‘살아 있는 저널리즘’이었다.

1965년 시작한 생방송 공개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세계 최초의 ‘타운미팅’ 프로그램이다. 타운미팅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신문에 비해 방송은 많은 수용자를 갖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공론장 매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방송 공개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하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 미국과 같은 언론 자유의 나라에서도 전국적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군사정부 시대에 한국에서 정치경제 이슈에 대한 생방송 공개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은 방송사 폐국까지 각오하지 않고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동아방송은 생방송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 동아방송은 세계 방송역사에 가장 용기 있는 방송으로 기록될 것이다.

방송의 긴 역사로 본다면 동아방송의 17년 7개월은 짧은 기간이다. 그동안 동아방송은 많은 기념비적 프로그램을 내보냈으며 한국 방송문화의 격을 높였다. 세계 기준으로도 수준 높은 방송이며 세계 방송저널리즘 역사에 기록되고도 남을 한국 방송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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