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윤성]검시제도 도입 하루가 시급한데…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검시(檢屍), 즉 주검을 검사하는 일이라면 범죄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예도 있다. 김 씨 아버지는 두 달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계단 옆에 쓰러진 채 발견됐고 119구급대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김 씨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아버지가 다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찰 조사도 그렇게 끝났다.

김 씨는 아버지 이름으로 들었던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회사는 거절했다.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으로 의식을 잃고 계단 아래에 쓰러져 돌아가셨으므로 재해 사망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의사가 작성한 검안서는 사망 원인을 ‘미상’(알 수 없음)이라고 했고, 경찰 조서는 가족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됐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경찰은 애초에 변사사건으로 조사했으나 범죄의 의심이 없기에 종결했다. 어차피 사망 원인이 질병 때문이거나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사고 때문이라면 경찰로서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부검 등의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도 검시는 필요했다. 김 씨에게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재해사망보험금)를 찾지 못하였다는 억울함이 남을 수 있다. 만약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했다면 그 역시 근거가 없는 지급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24만여 명이 사망한다. 미국이나 일본은 전체 사망자의 15% 정도가 검시 대상이다. 같은 비율이라면 우리나라에도 해마다 3만6000건, 하루에 100건 정도가 발생한다. 변사자라고 해서 모두 범죄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사망 원인이 분명하지 않거나 범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경찰은 일단 조사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경찰이 주도해 의사를 부르기도 한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모든 변사자에 대해 경찰의 수사와 무관하게 의학적 검사(검시)를 한다. 검시는 경찰의 수사와 달리하며, 대상과 절차를 법률로 정한다. 수사 책임자는 경찰 조사 결과와 독립된 검시 결과를 얻는다. 이렇게 변사사건에 대해 수사와 다른 의견(second opinion)을 구하면 사건이 잘못 처리될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검시 방법으로는 주검을 훼손하지 않는 검안과 해부를 통한 부검이 있다. 외국의 예를 보면 검시 대상의 3분의 1이 부검 대상이다.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3만6000건의 검시 대상이 있고 이 가운데 1만2000건이 부검 대상이다. 그런데 국내의 실제 부검 건수는 매년 6000건 정도일 뿐이다.

부검 대상이지만 부검하지 않은 6000건은 어떻게 되는가. 2만4000건에 이르는 검시 대상은 과연 전문적인 검사를 받는가. 물론 검시를 하지 않았다거나 부검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건이 모두 잘못되지는 않는다. 아주 적은 수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범인이 바뀌었거나 범인이 없는 변사사건이 가끔 있다.

검시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필요성은 모두 인정한다. 근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검시제도 확립을 정부에 권고했고 입법을 추진했다. 재작년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매우 깊게 다뤘다. 결국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는 검시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부서가 관장하느냐다.

검시전문가는 약 300명이 필요한데 현재 40명 정도이다. 턱없이 부족하므로 이 인력으로는 제도를 운영할 수 없다. 지금부터 매년 20명씩 양성해도 15년이 걸린다. 더 큰 문제는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이다. 검시는 범죄수사에만 관여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험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검시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