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친구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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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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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전화번호부로 다섯 페이지, ‘싸이월드’에서 ‘사람 검색’을 하면 수십 페이지가 나오는 흔한 이름입니다. 너무 흔한 덕분에 그동안 저는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남들이 인터넷에서의 ‘사생활 노출’ 문제를 걱정해도 이런 흔한 이름으로는 여간해서 발견되기 힘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새 제 익명성이 사라졌습니다. 구글처럼 성능 좋은 검색엔진 때문입니다. ‘개성’을 살리겠다고 e메일과 ID를 독특하게 만들었더니 제가 남긴 댓글, 블로그에 올린 글, 인터넷쇼핑몰의 상품 평가 등이 구글 검색을 통해 쉽게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에 우선 잘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나 카페 등의 인터넷 서비스에 탈퇴 신청을 했습니다. 해당 업체 고객센터에 e메일을 보내 제 ‘흔적’을 지워 달라는 부탁도 했고, 가족끼리 아이 사진을 보려고 만들어둔 블로그에는 ‘검색엔진 접근차단’ 기능까지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맘먹고 검색엔진을 뒤지면 얼마든지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정보는 검색이 가능했습니다.

제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실명과 e메일, ID 등을 차곡차곡 저장해 뒀거든요. 함께 놀러가서 찍은 사진, 함께 학교를 다닌 추억, 서로의 가족을 만나 나눈 경험 등이 수많은 친구의 블로그와 카페 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제 친구들은 사생활을 지키는 외로움보다는 공유의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고, 그런 공유의 즐거움은 인터넷을 따뜻한 공간으로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저처럼 온라인에서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저와 같은 생각은 존중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영리한 서비스들 때문에 저 같은 사람들의 자리가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자신의 e메일을 등록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는 계산을 해가며 친구 관계를 역추적합니다. 등록한 ‘모교’ 정보로 동창을 찾아주는 건 기본이고, 공통의 친구가 많은 사람을 찾아 ‘너희 서로 아는 사이지?’라며 눈앞에 서로의 존재를 들이대 친구 맺기를 강요합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용 페이스북 프로그램은 대놓고 휴대전화 주소록을 들여다본 뒤 그 속의 e메일 정보를 이용해 친구를 찾아줍니다.

이렇게 친구가 늘어난 다음에는 정보를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석 달 전 집주소를 물어보는 친구에게 주소를 알려줬고, 어제 다른 친구에게 해외여행 휴가계획을 자랑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는 도둑에게 최고의 정보입니다. 술에 취해 흥겹게 놀던 모습을 친구들이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퍼뜨린다면? 이런 영상을 삭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친구를 믿지 마세요. 인터넷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광장에서 그 일을 하는 셈이니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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