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1가구 1PC 운동’… ‘디지털 디바이드’ 과연 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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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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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정보통신부는 ‘인터넷PC(개인용 컴퓨터)’라는 값싼 컴퓨터를 제조업체들과 함께 기획해 만들며 ‘1가구 1PC 운동’을 벌입니다.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계층은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더 부자가 되고, 컴퓨터조차 사기 힘든 저소득층은 정보 빈곤 탓에 가난을 대물림한다는 주장인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를 막겠다는 의도였죠.

하지만 최근 나오는 연구 결과들은 당시 디지털 디바이드에 대한 우리의 우려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냈을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최근 ‘디지털 디바이드 측정하기’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2000∼2005년 이 지역에 마을별로 시기가 다르게 보급됐던 초고속인터넷이 해당 지역 학생들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 겁니다.

그 결과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된 지역 학생들은 그해부터 수학과 읽기 과목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초고속인터넷 회사가 여럿 들어와 경쟁을 벌이고 이에 따라 초고속인터넷이 더 광범위하게 보급되자 학생들의 성적은 더 내려가죠. 눈에 띈 건 초고속인터넷 보급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컴퓨터가 사라진 학생들은 성적이 오히려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성적 하락이 저소득층에서 더 심했다는 데 있습니다. 고소득 가정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근로 시간도 상대적으로 적어 자녀들의 컴퓨터 사용을 더 많이 신경 써서 관리했기 때문이죠.

루마니아 정부도 지난해 디지털 디바이드를 줄이겠다며 저소득 가정에 200유로(약 31만4000원)의 컴퓨터 구입 보조금을 줬습니다. 미국 시카고대와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이를 조사했더니 보조금을 받아 컴퓨터를 산 가정의 학생들은 소득이 약간 높아 보조금도 못 받고 컴퓨터도 사지 못한 가정의 학생들보다 수학, 루마니아어, 영어 성적이 더 떨어졌습니다. 한 가지는 보조금을 받은 가정의 학생들이 나았는데, 그건 바로 컴퓨터 활용 기술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동아대와 인제대 의대 연구진이 컴퓨터 이용 시간과 청소년 비만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하루 2시간 이내로 컴퓨터를 쓰는 청소년에게는 컴퓨터 사용이 비만과 별 관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시간이 넘으면 비만 위험도가 갑자기 늘어납니다. 문제는 조사 대상이었던 부산 지역 중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하루 4시간 이상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정부는 디지털TV를 보급해야 방송의 질이 높아진다며 ‘보급형 디지털TV’ 사업을 벌이고 있고, 스마트폰 보급과 차세대 통신망 확충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기계를 ‘어떻게’ 쓰느냐는 겁니다.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 시간과 활용 방식을 한번쯤 다시 살펴볼 때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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