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부실공사 먹이사슬, 상생으로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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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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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시행된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런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건축가가 지은 집이 무너져 주인이 숨지면 그 건축가를 사형시키고 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건축가의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 흔히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처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조항을 접하고는 ‘아니, 그때도 부실공사가 있었단 말인가’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함무라비 법전을 기준으로 삼으면 부실공사의 역사는 3700년도 넘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역사라면 아마도 부실공사의 코드는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부든 민간이든 누구라도 부실공사의 뿌리를 뽑겠다고 나서는 것이 무모한 일이 아닐까. 어쨌든 함무라비 법전은 부실공사의 대응책은 알려줄지언정 부실공사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좀처럼 부실공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중 빠질 수 없는 하나를 꼽으라면 하도급 관행이 될 것이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일감을 주면서 값을 후려치다 보니 하청업체는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과감하게(?)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건축물에 들어갈 요소가 정량을 채우지 못하면 결국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의 최종 피해자는 건축물의 소유주나 이를 이용하는 서민들이 된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힘없는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원청업체들에 관한 얘기는 여전히 들려온다. 경쟁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낸 업체에 공사를 맡기지 않고 낮은 가격으로 응찰한 업체 2, 3곳에 다시 입찰을 붙여 가격을 더 낮춘, ‘비용 절감의 화신’ 같은 원청업체가 있다. 공기업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받아놓고는 하청업체에는 예외 없이 어음을 안겨준 ‘현금 자물쇠’ 건설업체의 사례도 없지 않다. 하청업체가 건물을 다 지어 넘겨줬으나 법정지급기한인 60일이 지나도록 공사대금을 주지 않는, ‘나는 모르겠소’ 식의 건설사도 있다.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업계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먹이사슬의 피라미드’가 가장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곳은 건설업계일 터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상생을 위해 애쓰자는 얘기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국내 초일류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챙기는 분위기가 퍼지면 건설업계의 하도급 관행이 자연스레 바로잡힌다고 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부가 건설업계의 혼탁한 관행을 대대적으로 손보기 직전의 고요일까.

어느 소규모 건설업체 사장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큰 건설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답변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큰 업체 오너들이 중소업체의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그럴 단계가 됐습니다. 규제로는 안 되고 규제할 방법도 없습니다.” ‘너무 순진한 판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4000년 가까이 사라지지 않는 부실공사를 없애려면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메아리가 어디선가 울려왔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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