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이야기’ 20선]<1>축제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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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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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사라진 한반도의 축제
◇축제인류학/류정아 지음·살림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는 모두 한국 고대사회의 제천의례다. 일종의 추수감사제로 종교적 기능은 물론이고 유희적 기능을 수행해 사회구성원의 결속을 높였다. 이처럼 축제는 다양한 기능과 의미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현상이다. 사회인류학을 전공하고 축제문화를 연구해온 저자는 책에서 축제의 기능을 분석하고 세계 각지의 축제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보통 축제에서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일탈행동이 허용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행위를 축제 기간 내로 한정짓고 있기도 하다. 결국 사회적 불만을 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역설적 기능을 수행한다.

축제 기간에는 종교적 제의나 유희 속에서 성 역할이나 사회문화적 지위의 전도가 일어나기도 하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어 표현되기도 한다. 사회인류학자인 빅터 터너는 이런 비일상적 순간을 ‘리미널리티(liminality·경계선) 단계’로 부른다. ‘문지방’을 의미하는 ‘리멘(Limen)’에서 파생한 단어로 문지방에 서 있는 것처럼 평소에는 금기로 여겨지는 공간과 행위를 상정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금기를 넘나드는 경험을 같은 시공간에서 겪은 이들은 자유, 평등, 동료애,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사회, 경제적 지위의 종적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입장에서 횡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게 되고, 이것이 사회구성원 간 동질성을 느끼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축제의 비일상적 경험이 일상적 관계를 더욱 긴밀히 느끼도록 하는 셈이다.

현대사회의 축제는 고대의 종교적 신성성보다 세속적 여흥거리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 축제인 카니발은 본래 기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축제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 브라질 리우 카니발, 영국 노팅힐 카니발 등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종합예술축제 성격이 강하다. 독일 뮌헨 맥주축제, 영국 에든버러 연극제 등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표현하거나 관광상품으로 기능하는 축제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부터 단오나 추석 등 민족 고유의 명절을 통해 축제문화를 이어왔다. 불교문화가 융성하면서 팔관회와 연등회 등도 열렸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축제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산대잡극이 주로 연행됐다. 동네 단위로 동제와 굿이 열려 지역민을 결속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 축제의 전통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저자는 “일제하에서 고유의 민속놀이는 미신행위로 간주되어서 버려야 할 것으로 강제되었다”라며 “6·25전쟁, 경제난 등으로 ‘지극히 낭비적인’ 축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여가문화에 관심이 커졌고 지역자치가 강조되면서 지역민 화합을 위한 계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관 주도, 상부하달식으로 축제가 치러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과 함께 “축제는 스스로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표현이며 축제에 대한 고찰은 곧 삶에 대한 고찰”이라고 말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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