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이야기’ 20선]<2>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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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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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내리는 벨기에의 오랜 도시에 갑자기 나타난 오렌지색 복장의 거인들과 그들의 춤과, 허공을 무자비하게 날아다니던 매서운 오렌지를 보며 맡았던 아열대의 체취…뼈를 에이는 혹한에 비까지 내리는 북해의 항구 도시에서 노란색 우산을 들고 나타난 광인의 무리에 샛노랗게 질려 미쳐가기도 했다.”》
色다른 유럽의 도시축제들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김규원 지음·시공사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축제의 색을 찾아 나선 한 사냥꾼의 보고서”라고 말한다. 프랑스 유학 중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된 뒤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그간 함께 누리고 즐겼던 유럽의 축제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장터 축제, 벨기에 뱅슈 카니발, 스위스의 바젤 카니발 등 이 책에서 언급되는 축제들의 특징을 저자는 그 축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로 표현한다. 그는 “제각각인 독특한 색이야말로 축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스페인의 국경도시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페르민 축제의 색은 핏빛에 가까운 붉은색이다. 축제 프로그램은 음식, 가수 공연, 댄스파티, 불꽃 축제, 거리 행진 등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종합 축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축제를 돋보이게 해주는 결정적인 프로그램이 있으니, 투우와 소몰이다.

소몰이는 산토도밍고 거리에서 시작된다. 길가에 인파가 몰려 있고 안전요원, 경찰들이 이 죽음의 경주를 준비한다. 소몰이에 참여한 인파들이 자기들끼리 부딪쳐 넘어지고 뛰기 시작할 즈음, 거리 저쪽에서 황소가 도시를 가르며 달려온다. 이 소몰이는 실제로 살벌한데, 성난 황소의 뿔에 찔려 사망자, 부상자가 생기기도 한다.

이 축제의 보석이자 축제 속의 축제로 불리는 것은 소몰이 다음 날 열리는 투우다. 투우사의 칼끝이 소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고 집채만 한 몸집의 황소가 쓰러지는 순간, 침묵에 이어 거대한 갈채가 울리며 의식이 끝난다.

독일의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축제는 금빛이다. 저자는 “프랑크푸르트, 쾰른 등 독일의 어느 대도시에서도 크리스마스 장터가 열리지만 이곳의 거대한 규모를 보면 뉘른베르크가 장터 축제의 황제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붉은색 천막들, 크리스마스 정령 같은 황금빛 소품들, 독일 축제의 단골인 소시지와 빵, 프레첼, 글뤼바인(계피, 레몬 등으로 향을 낸 뜨거운 와인), 장터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과 연주…. 이런저런 구경에 몰두하다 보면 독일의 겨울해가 짧은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공연 축제로 잘 알려진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북해의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초록빛. 1947년 길고 참혹했던 전쟁 중 잊어버린 예술에 대한 감성을 일깨우며 처음 시작됐던 이 축제는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준비한 공연 티켓의 95%에 해당하는 18만 장이 팔렸다. 당시 에든버러 시민들은 외지에서 몰려들어 숙소를 잡지 못한 관람객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잠자리로 제공했다고 한다. 축제를 위해 에든버러는 대형건물을 세우지 않는다. 그 대신 미술관, 공공청사, 술집, 카페 등 대부분의 시설들이 극장이라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자신의 안방을 숙박시설로 내줬던 초기의 시민들처럼, 현재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축제를 준비하는 문화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밖에도 아비뇽, 바르셀로나 등지의 축제에 관한 글이 수록됐다. 저자가 직접 방문한 현지의 분위기를 기행문처럼 서술해가는 한편, 각 도시 축제의 유래와 전통, 진행 방식 등을 사진자료와 함께 담아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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