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아픈 역사 얽힌 세 나라 치유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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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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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베트남현대-일본근현대미술전

‘호에이 컬렉션 특선전: 베트남 현대미술’에서 선보인 또리엔의 인물화 ‘아오자이’. 식민지와 내전의 아픔을 겪은 베트남의 미술은 서구 미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의 전통을 접목해 독자적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호에이 컬렉션 특선전: 베트남 현대미술’에서 선보인 또리엔의 인물화 ‘아오자이’. 식민지와 내전의 아픔을 겪은 베트남의 미술은 서구 미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의 전통을 접목해 독자적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에는 없다. 부산에 가야 볼 수 있다. 지금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일본 근현대미술전’과 ‘베트남 현대미술전’. 지역적으로 가깝지만 서구 미술과 달리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아시아 미술과의 새로운 만남을 제안하는 자리다.

일본 미술사에 빛나는 구마가이 모리카즈, 레오나르 후지타, 고이토 겐타로 등 근대 화가부터 구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현대 작가를 소개하는 일본 작품전에서는 근대미술기에 양국이 주고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다(4월 18일까지).

식민지 시대와 내전을 겪은 베트남의 작품을 선보인 베트남 작품전은 한국군 참전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역사의 상처를 넘어 치유를 지향한다. 근현대미술을 두루 살펴보는 1부는 4월 25일까지, 작가 10명을 조명하는 2부는 5월 1일∼7월 11일 이어진다.

이들 전시는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은 두 나라를 통해 아시아가 걸어온 20세기를 반추하는 기회인 동시에 기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일본 근현대미술전의 경우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의 컬렉션으로, 베트남 현대미술전은 일본인 컬렉터 이토 도요키치 부부가 기증한 작품으로 이뤄졌다. 한국 일본 베트남의 문화교류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이자 시대와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소통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051-744-2602

○ 역사에 대한 성찰

‘신옥진 컬렉션: 일본 근현대미술전’에 나온 사토미 가쓰조의 유화 ‘얼굴’. 이 전시에서는 일본 근대미술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구마가이 모리카즈, 레오나르 후지타, 고이토겐타로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신옥진 컬렉션: 일본 근현대미술전’에 나온 사토미 가쓰조의 유화 ‘얼굴’. 이 전시에서는 일본 근대미술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구마가이 모리카즈, 레오나르 후지타, 고이토겐타로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그동안 수집한 작품을 미술관에 주고 나니 허탈감이 들더라. 미술전문가로서 양적으로 나갈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수집해 기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1세대 작가들이 대개 일본 유학파란 점을 고려해 일본 미술작품을 수집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환율이 치솟는 등 상황이 나빠졌다. 변명이 많으면 일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밀어붙였다.”

기증작으로 마련된 두 전시
나눔과 공생의 의미 일깨워


부산시립미술관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기증해 온 신옥진 대표의 말이다. 전시는 이전 기증작에 새로 수집한 40점을 합쳐 꾸몄다. 르누아르를 사사한 우메하라 류자부로(1888∼1986)의 자유로운 붓질이 살아있는 유화,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와 교유한 레오나르 후지타(1886∼1968)의 작품, 블라맹크에게 배운 사토미 가쓰조(1895∼1981)의 인물화, 부르델에게 배우고 권진규를 가르친 시미즈 다카시(1897∼1981)의 조각, 목판화의 거장 무나카타 시코(1903∼1975)의 판화가 눈에 띈다.

신 대표는 “이 전시는 일본 작가들이 유럽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그 영향을 극복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작가들이 일본 유학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이를 넘어섰는지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작가로는 아라키 노부요시,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세계적 거장으로 꼽히는 가와라 온의 작품도 나왔다. 전시를 둘러본 일본 총영사는 신 대표에게 “일본서도 보기 힘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해줘 무척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 평화를 향한 네트워크

“일본과 한국,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넘어 새로운 미래의 만남을 여는 데 이들 작품이 소중한 기회를 만들기 바란다.”

부산시립미술관에 베트남 미술작품을 기증한 일본인 컬렉터 부부의 말이다. 이들은 컬렉션의 이름도 풍요한 공동번영의 시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호에이(豊英)컬렉션’으로 명명했다.

베트남의 자연과 역사가 녹아든 풍경과 인물화 등 100점을 선보인 전시는 관람객을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이웃과 만나도록 이끈다. 당남의 수묵담채 풍경은 베트남이 동북아 문화권에 속함을 일깨우고, 총을 내려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성을 그린 레휘화의 작품은 베트남 현대사 속의 여성의 자리를 보여준다. 김준기 큐레이터는 “서구 미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 전통을 접목한 베트남 미술은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고 소개했다.

부산=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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