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사형, 집행해야 하나

  • Array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사행 집행이 재개될까요. 정부가 1997년 23명을 사형한 이후에는 집행한 사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으로 흉악범을 엄벌하라는 국민 여론이 고조되면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사형 집행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사형제의 존폐 여부 및 시기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데 어떤 논리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해야 좋을까요.》
[찬] 판결대로 하는 게 법치의 기본
무고한 국민 보호 위한 장치 현실적으로 필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실제 염두에 두고 있다”며 청송교도소에 사형집행 시설의 설치 방침을 밝혔다. 사형집행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잠재적 범죄자에게 “사형제도가 없어지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이해된다.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으로 흉악범에 대한 단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사형제도는 헌법(제110조 제4항 단서)이 스스로 예상하는 형벌의 한 종류이고 생명권 제한에서의 헌법 제37조 제2항(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에 의한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 결정에 대해 생명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이고 존엄한 천부적 권리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아무도 박탈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우리나라의 국격 및 국민의 높아진 의식수준에 걸맞게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변협의 사형제도연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필자가 아는 바로는 상당수 변호사도 일반인의 여론조사 결과와 다르지 않게 사형제 존치론에 찬성한다. 판결이 확정된 사형수를 처형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법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 일이고 흉악범죄의 발생원인이 된다는 주장에 수긍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헌재의 판단에서 나타나듯이 사형은 무고한 일반국민의 생명보호 등 극히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형벌의 경고적 기능을 무시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그 중한 범법 정도와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사형은 당해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잔악무도한 범죄행위의 결과이다. 생명권은 상대적 기본권이고 사형제도는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반인륜적 극악범죄의 경우로 한정된다. 생명권이 천부적 권리로서 아무도 박탈할 수 없다는 사형제폐지론은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과 일본에서 실시하는 사형제도가 국격이나 문명의 척도가 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필자도 우리나라가 사형제도 없이 절대적 종신제로 무고한 일반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헌재의 판단처럼 사형제도는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威(하,혁))를 통해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사형 집행으로 극악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며 범죄인의 재범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상의 목적을 가진다. 감성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처형에는 반대하지만 사형 집행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헌 변호사

[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해선 안돼
사형제의 살인범죄 억제 효과 아직 입증 안돼


법무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법률문화를 대표하는 분이다. 그런 분이 사형집행에 대한 부활의 의지를 표명했다면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그런 언급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다. 모든 형사정책은 한순간의 상황이나 감정으로 결정될 수 없다. 법치국가 원칙을 누구보다 강조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우리 헌법에서 명시한 인간의 존엄에 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권리침해금지 원칙을 존중하고 이를 준수해야 할 책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지도 벌써 12년이 흘렀다. 국제앰네스티와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 및 주요 인권국가가 한국을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인정한 지 2년하고도 2개월이 넘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인권 관계자는 한국에서 사형집행이 물 건너갔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사형집행을 강행한다면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의 지위를 스스로 망침으로써 반인권 국가 내지 반인권 정권이라는 세계적 낙인이 찍히게 되는 수치만을 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가 용납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헌법은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본질적 기본권인 생명권을 박탈하면 헌법 규정에 반하게 된다. 예컨대 신체의 자유권은 그 본질적 권리인 신체 절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악질적인 강도범이라도 팔을 자르는 절단형을 우리는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절단형이 잔인하고 인간존엄의 본질적 침해라면 사람의 생명 박탈은 그 이상이지 결코 그 이하일 수 없다.

둘째로 국가는 윤리적 존재이기에 정당해야 한다. 국가가 사기를 쳐도 좋다면 국민의 준법정신은 파괴되고 사회평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범죄를 범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국민과 약속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벌을 과한다. 그럼에도 국가 스스로 사람을 살해하는 사형제의 허용은 윤리적 모순이다.

셋째로 우리나라는 최근 유럽연합(EU)과 범죄인도조약을 체결하면서 EU에서 인도된 범인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EU에서 인도된 범인에게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면 국내에서 죄를 범한 범인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적용해야 헌법상의 평등권을 실현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넷째로 사형제도의 존치와 집행이 살인범죄 등 강력범죄의 예방 효과를 가지려면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1988년과 2002년 유엔 인권위의 광범위한 조사 결과 사형제도의 존치가 살인범죄의 발생 억제에 효과가 있음을 밝혀내지 못했다. 사형제가 살인범죄 같은 강력범죄의 예방효과가 없다는 의심이 들 때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할까?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