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도요타의 위기’ 안 빠지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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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소비자 7명이 사망했다. 누군가 유통단계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것으로 보였다.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드존슨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조사 내용 등을 언론에 알렸고 소비자들에게는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범인은 3주 만에 붙잡혔고 몇 개 제품만 범행에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스는 유통되던 타이레놀 3000만 병을 모두 회수했다. 제품의 포장도 기존 캡슐 타입에서 알약 형태로 바꿨고 밀봉포장을 도입했다. 이 회사가 입은 손실은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인 2억5000만 달러에 달했고 핵심 제품의 이미지 손상 때문에 증권사들의 전망은 비관적이었지만 적극적이고 진실한 대응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빠른 회복은 물론이고 이전보다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됐다.

도요타의 급발진 결함 은폐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국내 주요 기업의 잇따른 자발적 리콜 발표가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들어 ‘투싼ix’의 클러치페달 관련 부품과 ‘쏘나타’의 잠금장치 등 자발적인 리콜 2건을 발표했다. LG전자도 2월 어린이 사망사고가 일어난 대형 드럼세탁기 105만 대를 리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폭발사고를 일으킨 냉장고 21만 대의 리콜을 결정했다. 이들 기업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리콜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업들의 그런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투싼ix는 지난해부터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내용이고, 드럼세탁기도 이미 2008년 2건의 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올해 2월 3번째 사망자가 나오고서야 내려진 결정이다. 도요타 사태로 소비자들이 보내는 감시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지지 않았다면 이번 리콜 결정이 나왔을까 싶다. 냉장고 리콜의 경우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으로 이뤄졌다고 삼성전자 측은 자랑스레 밝혔다. 그런데 뒤집어놓고 보면 이 전 회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사건 처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소비자 보호나 위기관리 매뉴얼이 스스로 가동되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은 아닐까.

글로벌 플레이어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 기업들이 제품에서 결함이나 소비자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됐을 경우 공식적인 매뉴얼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다기보다는 기업에 발생할 피해와 소비자들의 반응을 저울질하고, 때로는 오너의 의사결정에 따라 대응 결과가 크게 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요즘은 소비자들의 의견이나 불만, 제품의 문제점은 동영상까지 첨부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이처럼 수동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면 우리나라 기업도 언제든 도요타와 같은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존슨앤드존슨처럼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입장에 서는 기업철학을 임직원 전체가 공유하도록 다시 점검할 때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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