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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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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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시간, 주윤균 그림 제공 포털아트
공간시간, 주윤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귀신과 도깨비, 바닷속 용왕님과 달나라 옥토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범주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했습니다. 그것을 들으며 상상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 어른이 된 뒤에도 우리의 마음 밑바탕에서는 항상 이야기에 대한 향수가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뭉클하게 하거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이야기를 접하면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나 연극을 접하는 일도 모두 이야기에 대한 갈망을 반영합니다. 어째서 인간은 그토록 이야기를 그리워하고 이야기를 갈망하며 살까요.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는 흐름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의 창작 과정입니다. 빗방울이 떨어져 바다에 이르는 과정, 한 마리 곤충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동차나 신발이 마모되는 과정에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우주 지구 국가 가문에도 현재에 이르게 된 숱한 드라마가 깃들어 있을 터이니 삼라만상이 모두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물은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흘러갑니다. 순조롭게 가는 과정도 있고 파란과 질곡을 만나고 위기와 절정을 겪는 과정도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칠수록 이야기는 극적 요소가 강해집니다. 하지만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일수록 감동의 진폭은 커집니다.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는 이야기에 대해 우리는 지루하다, 지리멸렬하다, 짜증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날마다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아무 걱정거리 없이 배불리 잘 먹고 잘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인생, 흥미진진한 인생 과정을 두고 불행한 인생, 팔자 사나운 인생이라고 비관하고 절망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면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야 합니다. 탐욕과 경쟁, 비관과 원망이 흐름을 가로막아 이야기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열어주면 이야기는 절로 풀려가고 마음도 절로 평안해집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위적인 힘, 이야기의 생명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창작자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고 남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듭니다.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다른 사람 이야기의 등장인물입니다. 주인공 의식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거부해 흐름이 멈추거나 커지지 못합니다. 작은 물줄기가 마침내 바다에 당도하는 과정과 하등 다를 바 없으니 각자의 이야기는 결국 전체의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르니 우주적인 이야기 연대가 형성됩니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장대하게 어우러진 무궁무진한 이야기 우주를 상상해 보세요. 그대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만들어낸 이야기는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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