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눈앞의 성장률보다 가계부채 더 신경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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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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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과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한국 카드사태, 그리고 최근 남유럽 경제의 어려움과 중국의 지급준비율 인상까지. 모두 과도한 부채와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자신의 소득과 자산으로 부채 규모를 감당할 수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부채가 개별 경제주체와 경제 전체에 좋은 순환구조를 선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부채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금이 없는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많은 가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내 집 마련을 돕는다. 경기가 순환적 수축 국면에 들어갔을 때는 정부가 세수보다 돈을 더 써 나라 경제를 도울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개별 경제주체나 경제 전체의 소득과 자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일정 기간마다 도래하는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해당 부채가 부실화되면 돈을 빌려줬던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빌린 돈으로 지탱하던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경제주체들의 대차대조표가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는 서로 부채를 빨리 상환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경제주체들이 더는 돈을 빌리지 않으면 경제 전체의 부채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결국 전체 경제 성장 중 부채가 지탱해주던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 부채 구조조정과 함께 경제 침체 또는 저성장이 일상화되는 상황을 노무라경제연구소의 리처드 구는 ‘대차대조표 침체’라 이름붙인 바 있다.

현재 국내 가계 부채는 명목처분가능소득의 70%에 육박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너무 크고 양극화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정체돼 부분 부실화 확률도 높다.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 관련 변동금리 대출로서 금리 상승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바로 대차대조표 침체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일각의 정책금리 인상 주장에 정부가 민감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측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가격을 부양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려 부채 구조조정을 충격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부로선 선택할 만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재보다 경제주체들의 부채가 더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 기존 부채 문제를 덮어두다가는 새 부채가 늘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정부는 정책금리 인상이나 금융기관 건전성 기준 강화 등의 방법으로 경제주체들의 부채가 지금보다 더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눈앞의 성장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문제라는 걸 정부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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