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학]<6>‘王夫之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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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3시 00분


“네 줄짜리 번역 놓고 1시간 넘게 갑론을박”

17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대학원 연구실에 왕부지사상연구회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발표자인 금종현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번역문을 읽고 있다. 임옥균 성균관대 연구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와 이종란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1992년 이
모임을 시작한 ‘원년멤버’다. 전영한 기자
17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대학원 연구실에 왕부지사상연구회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발표자인 금종현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번역문을 읽고 있다. 임옥균 성균관대 연구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와 이종란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1992년 이 모임을 시작한 ‘원년멤버’다. 전영한 기자
<6> 명청시대 유학자 왕부지의 ‘독사서대전설’ 옮기는 ‘王夫之사상연구회’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 오늘 부분은 정말 어렵더라고.” “번역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많이 좀 가르쳐 주세요.”

17일 오후 3시 서울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대학원 연구실. 김재경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발표를 맡은 금종현 씨(39·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수료)에게 말을 건넸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종란 씨(53·철학박사, 교사)는 발표문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치고 있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유학자 왕부지(王夫之)의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을 번역하는 ‘왕부지사상연구회’의 연구모임이었다. ‘독사서대전설’은 왕부지가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를 새롭게 해설한 책이다.

우선 금 씨가 번역해온 첫 번째 문단을 읽었다. 곧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 속속 나왔다.

“여기 ‘사생불망(死生不忘)’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사는 것과 죽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죽기 살기로 (측은지심을) 잊지 않는다는 뜻일 것 같은데….”

모임 내내 “이 한자를 현대어로 바꾸면 어떻게 되느냐” “이 문장의 주어를 뭐로 봐야 하냐” 등 문법 문제부터 “왕부지의 의도가 뭐냐” “지난번 번역과 일관성이 있느냐” 등 내용 문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때때로 “할수록 더 모르겠다” “결국 원점이다” “정말 어렵다”는 한탄이 튀어나왔다. 토론을 하며 의견이 엇갈릴 때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네 줄짜리 첫 문단 번역을 마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왕부지의 저서는 문장이 길고 고대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 어느 쪽도 아닌 탓에 번역이 까다롭다. 중국학자들도 현대 중국어로 번역하길 어려워한다.

왕부지는 유교뿐 아니라 노장사상과 불교, 서양문물까지 섭렵했다. 이날 번역 분량에도 불교 능엄경의 한 구절이 등장했다. 회원들이 “능엄경도 한번 봐야겠다”고 말하자 이종란 씨는 “이게 번역하다 보면 자꾸 다른 걸 또 봐야 하고 그러면 또 거기에 매력을 느껴서 연구하게 되고… 끝이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왕부지사상연구회는 1992년 임옥균 성균관대 연구교수, 이철승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종란 씨, 김동민 유학동양학부 연구원 등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대학원 선후배들이 모여 왕부지를 공부하기 시작해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3년 ‘대학 편’을 번역한 ‘왕부지, 대학을 논하다’를 펴냈다. 세계적으로 첫 번역이다. 지금은 중용 편 번역을 마치고 교정 중이며 맹자 편을 번역하고 있다.

올해는 왕부지 탄생 390주년으로 11월 22∼24일 왕부지의 고향인 중국 후난 성 헝양 시에서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연구 회원 중 5명이 참여한다. 이 대회에서 번역한 책을 나눠줄 예정이다.

뒤풀이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번역하느냐”고 물었다. 이상화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연구원은 “왕부지의 글을 보면 늘 실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적합한 것이 뭔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철승 수석연구원은 그 자리에서 ‘유즉사이궁리 무립리이한사(有卽事以窮理 無立理以限事)’라는 구절을 써보였다. 왕부지의 ‘속춘추좌씨전박의(續春秋左氏傳博義)’ 중 한 구절이다. ‘일로써 이치를 궁구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치를 먼저 세워놓고 일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는 의미다.

“왕부지는 명나라가 망하는 것을 직접 지켜본 인물입니다. 직접 청나라에 저항하는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는 망국(亡國)의 이유를 평생 고민하며 이론 중심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실천 중심의 사상을 펼쳤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왕부지(王夫之·1619∼1692)

중국 명말 청초의 유학자. 중국 후난(湖南) 성 헝양(衡陽) 출신으로 명이 멸망한 뒤 청의 관직을 거부하고 직접 청에 항거하는 군대를 일으켰다.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불교의 인식론, 서양문물까지 섭렵한 사상가다. 주요 저서로는 ‘독통감론(讀通鑑論)’ ‘송론(宋論)’ ‘황서(黃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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