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전망대]신뢰도 높아진 기업들, 고용창출로 화답을

  • 입력 2009년 9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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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듀크대 연수를 위해 인근 채플힐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귀국한지 한 달 보름 정도 됐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에 있다가 인구 1000만의 서울 한복판으로 출근하자니 일상으로의 복귀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심 차량 운행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시내 주행이 처음이 아닌데도 무척 긴장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채플힐에선 상대방 운전자의 다음 행위가 예측 가능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 것 같다. 예컨대 교통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대부분의 차량은 스톱 표지판 앞에서 일시 정지했다. 먼저 사거리에 진입한 차량부터 진행하고, 동시에 들어오면 어느 한쪽에서 먼저 가라고 수신호를 보내 순서를 정하곤 했다. 또 교통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서울에서처럼 꼬리를 물면서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차량은 거의 보지를 못했다. 새로운 것은 전혀 없었지만, 내가 가면 상대방은 멈출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운전이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제 카레이서이기도 한 기자의 동료는 경기에서의 격렬한 주행보다 일반 도로에서의 운전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경기에선 정해진 룰에 따라 순위 경쟁을 하기 때문에 마주 오는 차량과의 충돌 위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사실 일반도로에서는 중앙선 침범이나 신호 무시로 인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스티븐 코비의 책 ‘신뢰의 속도’를 읽고 미국 출신의 테니스 선수 앤디 로딕을 다시 보게 됐다. 그저 테니스 스타 중의 한 명이겠거니 했는데, 그는 스타 이상의 성품을 가졌다. 2005년 이탈리아 로마 마스터스대회 3라운드에서 로딕은 유리한 매치 포인트 순간 상대방 선수가 날린 두 번째 서브가 코트 귀퉁이에 떨어진 직후 상상 밖의 직언(直言)을 한다.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지만 로딕은 그 점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그는 코트 위 희미한 자국을 가리키면서 공이 선 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놀란 주심은 판정을 번복하고, 이후 속개된 게임에서 로딕은 졌다. 로딕은 게임 자체보다 더 값진 신뢰를 얻었다고 이 책은 평가했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기자를 집으로 초청한 한 현지인이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일체의 주방용품이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이라며 자랑할 때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또 고속도로에서 심심찮게 발견하는 현대차 기아차 로고를 보면서 이들이 진정한 국가대표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올해 상반기 기업호감도’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50.2점의 결과가 나와 조사 이래 기업 호감도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 기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개발경제 시절 우리 기업은 정경유착, 노동착취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국민이 등을 돌린 아픈 기억이 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에는 반(反)기업 정서에 몰려 일방적으로 매를 맞는 ‘억울한’ 측면도 많았다. 지금 기업이 명예회복에 나선 상황은 친(親)기업 정부의 출범이 아니라 글로벌위기가 계기가 됐다는 생각을 해본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업이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으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된 때문이리라. 시장은 신뢰다. 국민의 성원을 얻은 기업이 고용창출로 화답하면 더욱 탄탄한 신뢰관계가 싹틀 것이다.

이강운 산업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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