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숲 속에 서면 세상이 보인다

  • 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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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번잡스럽게 느껴질 때 인적이 드문 숲을 찾아갑니다. 사람의 발길이 만들어놓은 편안한 길을 버리고 아직 길이 생성되지 않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완연히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햇살도 잘 들지 않는 깊은 숲은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심오합니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로부터 잡목과 잡풀, 이끼와 곤충,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어 공존합니다. 움직임을 멈추고 그 모든 생명의 하모니를 온몸으로 느끼노라면 그곳도 하나의 우주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숲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생의 어울림입니다. 무수히 많은 생명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지만 그곳에는 반목과 쟁투가 없습니다. 아름드리나무라고 잡목이나 잡풀을 무시하지 않고,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열세의 생명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우러지는 숲의 세계에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름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형성합니다. 문화도 없고 제도도 없는 생명의 보고(寶庫), 숲은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어울림의 숲입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차별과 차등과 갈등과 쟁투가 끊이지 않아 소음이 팽배합니다. 숲은 서로 다름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서로 다름을 앞세우려 합니다. 그래서 많이 가진 자, 힘 센 자,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고 믿는 세상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소음과 비명과 쟁투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나눔과 공존에 대한 생리가 부족하고 헌신과 이바지의 미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난 것들은 모두 숲으로 돌아가고 숲에 이바지합니다. 낙엽이 떨어져 숲을 비옥하게 만들고 나무가 죽어 다른 생명의 거름이 됩니다. 그렇게 개체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숲은 스스로 하나의 생명체가 됩니다. 하지만 숲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구상의 생물 전체에 기여하는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숲의 생리가 그와 같으니 숲에서는 모든 것이 영생이고 모든 것이 불멸입니다. 하나로 태어나 하나에 기여하고 하나로 환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흉내 내지 못하는 자연의 생리, 자연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완전한 공동체의 생리입니다.

깊고 오래된 숲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요입니다. 한낮에도 깊은 숲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밀한 고요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정적이나 침묵이 아닙니다. 차별화된 소음이 없는 숲의 고요, 그것은 정밀한 화음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물결이자 함성입니다.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우기는 우리네 세상을 생각하며 숲 속에 서 있을라치면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모두 다르면서 결국 하나를 이루는 숲에서는 날마다 생명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우리도 그렇게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춤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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