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이야기<3>한국한의학연구원

  • 입력 2008년 9월 25일 06시 43분


허준이 로봇으로 환생했다?

한의학에서는 중국 최고의 의학서로 알려진 ‘황제내경’을 인용해 의사가 환자의 병을 알아내는 수준을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보아서 아는 ‘신의(神醫)’, 들어서 아는 ‘성의(聖醫)’, 물어서 아는 ‘공의(工醫)’, 만져서 아는 ‘교의(巧醫)’.

맥을 짚는 교의는 가장 낮은 단계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상 한의학에서는 진맥을 금욕을 통한 정진 끝에 입문하는 마지막 단계의 의술로 보고 있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오장육부의 부조화에서 찾았던 조선의 명의 허준은 진맥의 달인이었다. 광해군의 손목에 연결된 실의 움직임만으로 병의 원인과 깊이를 알아냈다는 일화는 놀랍기만 하다.

“허준의 ‘신감(神感)’을 디지털화하라.”

대전 유성구 한국한의학연구원(www.kiom.re.kr)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의료기기 업체인 대요메디와 함께 한의학의 진맥 원리에 착안한 ‘지능형 맥진(脈診)로봇’을 2004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한의원에 가면 한의사가 검지 중지 약지 3개의 손가락을 손목의 맥에 대고 진맥을 한다. 마찬가지로 맥진로봇은 양 손목 각각 3개 부위 6부맥을 짚는다. 촌(寸)은 심장(왼쪽)과 폐(오른쪽), 관(關)은 간(왼쪽)과 비장(오른쪽), 척(尺)은 신장(왼쪽)과 대장(오른쪽)의 상태를 보여준다.

세밀히 보면 한의사는 맥을 강약을 두어 짚으면서 진단한다. 센서의 압력에 대한 반응 정도와 맥의 강도로 진단하는 맥진로봇도 6부맥을 5단계의 강도로 짚어 30가지의 상태를 측정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의사는 맥의 상태를 ‘거문고 현(絃) 같다(현맥·가늘고 팽팽한 느낌으로 피로한 상태)’,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다(활맥·임신한 상태)’,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 것 같다(홍맥·풍성하고 강함)’ 등으로 표현하지만 맥진로봇은 수치와 영상으로 보여준다.

24일 오전 기자가 이 연구원 의료연구부를 찾아 맥진로봇의 진맥을 받아봤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니터에 ‘맥상’과 ‘맥파’의 분석 결과가 수치와 영상으로 떠올랐다.

분석 결과를 본 김종열(한의사) 책임연구원은 “맥이 보통 사람보다 빠르다”며 “이런 경우 몸의 상태가 과열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빨리 소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조만간 기능을 더욱 높인 맥진로봇 2호기를 선보이는 한편 휴대용 맥진로봇을 개발할 계획. 김 연구원은 “허준 선생이 환자를 보러 가면 그의 집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이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의 맥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라며 “휴대용은 수시로 맥을 측정해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휴대용이 보급돼 진맥 결과가 수시로 한의사에게 보내지면 병이 나기 전에 예방치료를 할 수도 있다.

맥진로봇이 허준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김 연구원의 대답은 이랬다. “명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허준 선생의 신묘한 진맥 감각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면 바로 맥진로봇으로 구현할 텐데….”

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과학화와 표준화를 위해 1994년 설립됐다. 김기옥 원장은 “융합기술을 적용하고 의료기기 산업과 연계해 한의학을 국가의 성장동력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대덕연구단지 내의 연구소와 벤처기업에 관련된 것으로 소개할 만한 내용이 있거나 이 시리즈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동아닷컴 대전지역 전용 사이트(www.donga.com/news/daejeon)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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