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경제]기업은 왜 ‘벼랑 끝 전술’을 쓰나요

  • 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강력한 라이벌 기업이

마케팅 전쟁 시도할때

‘사활건 승부’ 상대방에게 흘려

계획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어

사례 “얘들아, 이번 방학에는 어디로 여행 갈까?”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던 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제주도요.”

아버지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언니가 대답했다.

“전 설악산에 가고 싶어요.”

이에 질세라 동생도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둘의 의견이 달라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문제가 생기자 어머니께서는 둘이서 잘 의논해 하나로 결정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언니는 아직 제주도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친구들 중에 자기밖에 없다며 제주도 여행을 고집했다.

동생은 비행기 타기가 싫다며 설악산 여행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자매의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목소리까지 높아지자 아버지께서 선언하셨다.

“오늘 오후 6시까지 한 곳을 정해 오거라. 만약 의견 통일이 안 되면 이번 가족 여행은 없던 일로 하겠다!”

아침 식사를 마친 자매는 언니 방으로 들어가서 논쟁을 계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니 방에서 나온 동생이 자신의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가 버렸고 방에서 동생의 고함이 들려왔다.

“에이그, 고집불통.”

둘이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한 게 분명했다.

시간이 흘러 오후 5시가 되자 언니가 자기 의견은 ‘변함없이 제주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조금 있다 방에서 나온 동생은 언니가 제주도를 양보하지 않은 채 외출한 걸 알게 됐다.

동생은 “언니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여행을 가고 싶으면 빨리 마음을 바꾸라고 말해야지” 하며 언니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화 벨 소리가 언니 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언니가 휴대전화를 방에 놓아 둔 채 외출한 것이었다!

동생의 입에서 한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말도 안 돼. 언니와 이야기할 방법이 없잖아.”

오후 6시가 됐다. 동생은 가족 여행을 가지 않는 것보다는 제주도라도 가는 게 좋다는 판단에 할 수 없이 언니의 뜻대로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동생을 토닥거렸다.

“기특하게 네가 양보해 주었구나.”

이해 식구들 사이에 이런 일이 자주 벌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치 양보 없이 경쟁하고 있는 기업이나 국가 사이에서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서로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라지만 상대방이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양보하면 손해를 보게 되고 상대방이 이득을 거의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는 ‘배수의 진’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달성했다. 강물이나 바다를 등지고 싸우는 ‘배수의 진’은 전쟁터에서 후퇴하면 어차피 강물이나 바다에 빠져 죽기 때문에 결국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노리는 전략이다.

언니는 제주도를 선언한 채 고의적으로 휴대전화를 방에 놔두고 외출했다. 자신과의 접촉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언니와 더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동생은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언니의 제안대로 제주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끝까지 설악산을 주장함으로써 언니의 전략을 무력화하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가족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어 자신에게도 좋을 리가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양보를 선택한다.

언니처럼 나는 선택을 변경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변경할 방법도 없음을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이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배수의 진’ 또는 ‘벼랑 끝 전략’이라고 부른다.

언니는 의사소통 채널을 모두 차단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활용했다. 이 방법 말고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미리 만들어 놓는 방법도 가능하다.

상대방 기업이 마케팅 전쟁을 시도하면 우리 기업은 사활을 걸고 한층 강화된 대응 전략을 바로 취할 것이며, 사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이 전략을 취소할 수 없도록 명시된 회사 규정을 미리 만들어 놓고 이 사실을 상대방 기업에 흘린다. 맞불 보복이 허위성 위협이 아님을 알게 된 상대방 기업은 이 기업을 상대로 마케팅 전쟁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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