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일본인들의 ‘대세 따르기’

  • 입력 2006년 8월 30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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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 모두 함께 건너면 두려울 것 없다.”

1979년 일본에서 ‘투 비트’라는 개그맨 콤비가 퍼뜨려 유행한 말이다. 멤버 중 한 사람은 훗날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다. 집단주의적인 일본 국민성을 익살스레 표현한 이 말의 패러디는 요즘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학력 저하, 모두 함께 내려간다면 두려울 것 없다.” 이런 식이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쓴웃음을 지으며 인용하는 농담 중엔 ‘타이타닉 버전’도 있다. 1912년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기 직전, 모자라는 구명보트에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태우기 위해 승객들의 양보를 받아내는 설득법을 국적에 따라 빗댄 얘기다. 영국인에게는 “당신, 신사죠?” 하면 된다. 미국인에게는 “영웅이 되고 싶죠?”, 독일인에게는 “여자와 아이를 먼저 태우는 것이 규칙입니다.” 일본인에게는? “모두 바다에 뛰어들고 있습니다”고 하면 된다.

일본인들은 ‘화(和)의 민족’임을 자칭한다. 화합과 융화를 중시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화(和)가 현실에서는 ‘대세 따르기’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여론도 ‘힘’과 ‘대세’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근래 들어 이런 예가 부쩍 눈에 띈다.

8월 내내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논란이 그랬다. 8월 15일 아침 총리가 참배를 강행하기 전까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참배 반대가 많았지만 당장 그날 저녁부터 찬성 우세로 역전됐다.

2003년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때도 반대 여론이 우세했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파병을 밀어붙이자 찬성론이 커졌다. 2005년 우정민영화의 경우는 더했다. 당초에는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는 초강수를 두자 여론이 돌아서 자민당에 압승을 안겨 줬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고이즈미 마술’이라거나 ‘리더십의 힘’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치인들은 한 걸음 나아가 대세에 편승한다. 현 정권의 주요 각료 세 명이 출마하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대부분의 파벌이 ‘아베 지지’로 입장을 선회하느라 부산하다. 집권 후 각료 배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언론에서는 이를 ‘눈사태 현상’이라 표현했다. 나머지 두 후보는 출마에 필요한 내부 추천자 20명도 모으지 못해 쩔쩔맸다.

대세가 아니면 철저하게 소외된다. 15일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의 고향 자택과 사무실에 우익의 방화 테러가 일어났지만 정부 여당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가토 전 간사장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는 등 최근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사건 발생 13일이 지난 28일에야 기자들의 질문에 마지못한 듯 “폭력으로 의사표현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원칙론을 밝혔을 뿐이다. 이어 아베 장관도 ‘수사 중’임을 전제하고 원론적으로 폭력을 비판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30년대 일본에서는 우익 테러가 횡행해 전현직 총리만 4명이 암살당한 일이 있다. 이후 언로가 말살된 분위기 속에서 중-일전쟁(1937년)과 태평양전쟁(1941년)으로 이어지는 일본 군국주의의 폭주가 이뤄졌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일본이 평화헌법을 버리려 하고 군비확장을 하며 주변 각국과 영토분쟁에 열중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모두 함께’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왠지 마음속을 맴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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