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조국]<3>‘마지막 출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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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축구팀을 응원하는 여성들. 이날 독일 겔젠키르헨 펠틴스아레나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아르헨티나전이 열렸다. AFP 자료 사진
16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축구팀을 응원하는 여성들. 이날 독일 겔젠키르헨 펠틴스아레나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아르헨티나전이 열렸다. AFP 자료 사진
《21일 오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간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리기 한 시간 전. 독일 뮌헨의 공식 응원장소인 올림피아파크에 뇌성이 울리더니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를 피해 간이 음식 판매대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네 명의 남자도 곧이어 비를 피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세르비아다.” “맥주 한잔 사겠다. 그 대신 몇 마디 물어 봐도 되겠는가.” “오케이.”》

네 사내는 37세 동갑내기.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두 사람은 스위스, 한 사람은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독일어는 별로 잘하지 못했다. 고향 베오그라드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드라간 페리치(37) 씨는 영어가 유창했다.

“아르헨티나에 6-0으로 대패했고 예선 탈락이 확정됐는데 뭣하러 응원하러 왔느냐”고 슬쩍 찔러 보았다. 페리치 씨는 “그래도 돈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낄낄거렸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란 이름의 월드컵 대표팀이 출전하는 것은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다. 몬테네그로가 주민투표를 거쳐 5일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몬테네그로인에게 섭섭한 감정은 없느냐”고 묻자 페리치 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몬테네그로 민족이란 없다. 종교도, 언어도, 추앙하는 성인과 영웅도 세르비아와 똑같다. 몬테네그로란 지역 구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다른 나라라니…. 독립한 이유? 빨리 유럽연합(EU)에 가입해 잘살고 싶었던 거겠지. 덩치 큰 세르비아와 함께라면 EU 가입이 늦어질 거라고 판단한 거다.”

어릴 때 그의 나라는 ‘유고연방’으로 불렸다. 옛 소련의 해체 직후 유고연방도 해체의 물결을 탔고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차례로 독립했다. 이어 민족과 종교 갈등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이어졌다.

“열다섯 살 때(1984년)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지. 내 나라 유고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연방이 분열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종교와 습관이 다르면 같이 살 수 없지. 단지 방법이 문제였다.”

신유고연방 대통령이었던 밀로셰비치는 중도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돈줄과 무력을 장악한 세력의 지지 아래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시민세력은 이를 제지할 수 없었다.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다 “내전 중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후방에서 의무병으로 일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축구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해서는 차라리 후련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다음 대회에는 ‘세르비아’란 이름으로 출전해 16강에도 들고 우승도 넘봤으면 좋겠다. 그 다음엔? 우리도 남들처럼 잘살아야지. ‘보통의’ 유럽 사람들처럼.”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한 것처럼 유고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이 언젠가 월드컵을 함께 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뮌헨=유윤종 특파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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