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초정밀 광학거울 제작은 ‘道닦기’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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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1m급 광학거울로 지구의 속살과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 있는 이윤우 박사. 사진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지름 1m급 광학거울로 지구의 속살과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 있는 이윤우 박사. 사진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마음도 보일까요?”

광학거울을 시험하고 있는 내게 휴일도 없이 일하던 실험실 동료 한 명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연구하는 거울은 평소 얼굴을 보는 보통 거울보다 훨씬 높은 정밀함을 요구한다. 보통 지름 1m인 대형 광학거울의 형상오차(직선과 곡선의 오차)만 하더라도 수∼수십nm(나노미터·1nm=10억 분의 1m) 미만이어야 한다. 이 정도로 정밀하게 렌즈를 깎으려면 한순간의 방심도 금물이다.

게다가 렌즈를 만들고 난 뒤 성능을 측정하려고 해도 약간의 진동이나 공기 흐름의 민감한 변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시험실에는 방진테이블이나 에어커튼처럼 든든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만 엔지니어들은 소음이 아예 없는 조용한 주말 한밤중을 ‘D데이’로 택해 최종 테스트를 하곤 한다.

옆에서 측정결과를 보고 있던 나는 열흘 정도는 더 연마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정진하여 득도(得道)하시길 바란다”며 화답했다.

하늘에서 지구를 관측하는 인공위성이나 먼 우주를 보는 천체망원경에 사용되는 대형 거울을 만들기 위해 몇 년 씩 측정과 가공을 반복하는 연구자들은 이런 선문답을 즐겨한다.

광학거울을 제작하는 일은 끝없는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매우 어렵고 지루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수년째 이런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만 하는 연구자들이 오랜 수련생활을 해 온 ‘수도자’처럼 행동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년 전 우리 연구팀도 오랜 ‘정진’ 끝에 지름 1m 광학거울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형 거울은 600km 상공에서 지상에 있는 7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물론 그 뒤에는 힘들고 반복된 과정이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를 천직으로 여긴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대형 망원경을 제작하고 싶었던 많은 선배 과학자들이 실험실을 방문해 “못다한 꿈을 이뤘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은 말끔히 사라진다.

이제 광학거울을 만드는 일만큼은 ‘득도’에 이른 연구실 식구들은 요즘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올해 7월 발사되는 다목적실용 위성 아리랑 2호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천체망원경이 우주로 나아가 미지의 신비를 생생히 전해 올 그날을 말이다.

이윤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광학연구단장 ywlee@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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