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가로세로 세계사’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 가로세로 세계사/이원복 지음/236쪽·1만1900원·김영사

구술 문제는 보통 제시문도 짧고 질문도 간결하다. 요구 사항이 적은 단도직입형 문제일수록 접근 방법은 그만큼 넓은 셈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지적 소양과 가치관의 성찰 수준도 뚜렷이 비교된다. 이 경우 거울로 둘러싸인 방처럼 순발력 있게 다각도로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미로처럼 꼬여 버린 문제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입시 제도나 부동산 문제가 그렇고, 국제적으로는 각종 민족분쟁이 대표적이다. 얽힌 실뭉치의 끝을 무작정 당겨 버리면 실타래는 더 세게 조여져 풀기가 힘들어진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부터가 해법의 시작이다.

그런데 격렬하게 갈등하는 지역 분쟁의 경우 대부분 현상을 파악하는 일조차 너무 복잡하다. 역사적 내력까지 살펴보려면 겹겹의 속껍질을 벗겨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를 집중 탐구하는 모범을 보여 준다. 만화로 그려진 덕분에 어려운 상황 맥락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발칸반도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세르비아에서 불붙었고, 1990년대의 보스니아 내전과 최근의 코소보 사태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종교 분쟁, 이념 분쟁, 민족 분쟁 등 발칸의 비극 속에는 현대 국제사회의 모순이 종합적으로 녹아 있다.

발칸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지대의 위치한 탓에 고대 로마부터 근대 제국주의의 열강에 이르기까지 이웃의 대제국들에 수없이 짓밟혔던 역사가 한 축을 차지한다. 공산권 몰락 이후, 동서 냉전 시기에 유보됐던 민족국가 건설은 뒤엉킨 종교와 민족 분포 때문에 인종청소로 이어졌다. 무려 다섯 나라로 갈라진 구 유고슬라비아는 극심한 혼란의 과정들을 지층처럼 보여 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고대-중세-근대의 제국주의 변화 양상을 역사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또한 동방정교와 로마 가톨릭, 이슬람의 변화 과정도 한눈에 조망하게 된다. 발칸반도의 민족 문제가 유럽과 아시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진지하게 따져볼 기회이다.

‘왜’ 싸우는지 알게 되면 통 큰 시각과 철학적 원칙도 함께 익힐 수 있다. 학생들은 현상의 가로와 세로를 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열린 민족주의’의 미래적 가치를 성찰해 보길 바란다. 더불어 ‘문명의 충돌’은 ‘무지의 충돌’일 뿐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