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마파도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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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해 개봉돼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깜짝 성공을 거둔 영화 ‘마파도’를 다뤄 볼게요. 여러분 중 일부는 ‘엽기 할머니’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가 논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파도’의 다섯 할머니에겐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비밀이 숨어 있어요(참고로, 이 영화의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입니다).》

[1] 스토리라인

‘주먹’ 출신으로 지금은 만홧가게를 운영하는 종보(오달수)는 로또복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삽니다. 그는 어느 날 다방종업원 끝순이(서영희)를 시켜 로또를 사는데, 꿈에 그리던 1등에 당첨되죠. 16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당첨금…. 하지만 끝순이는 복권을 가지고 자취를 감춥니다. 종보의 부하 재철(이정진)과 비리형사 충수(이문식)는 끝순이의 고향인, 지도에도 없는 낯선 섬 마파도를 찾아갑니다. 마파도에는 엽기적인 다섯 할머니가 사는데, 이들은 재철과 충수를 때론 달래고 때론 협박하면서 농사일에 부려 먹죠. 이윽고 마파도에 끝순이가 나타납니다. 재철과 충수는 그녀를 붙잡지만 그녀에게서 “갈매기가 복권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는 황당한 진실을 전해 듣습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재철도, 충수도, 마파도를 지키는 다섯 할머니도 아니에요. 바로 ‘마파도’라는 섬 자체죠. 이 섬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을 검게 물들인 탐욕을 지워 버리고, 사랑과 화해의 씨앗을 심는 비밀스러운 힘을 가졌으니까요. 원수처럼 지내던 재철과 충수도 결국 형제 같은 사이가 되고, 분노에 차 있던 종보도 결국엔 끝순이를 용서하잖아요.

그럼 ‘사랑과 화해’가 주제어일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래요.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해요.

이 영화에는 중요한 두 개의 장면이 있어요. 하나는 엽기 할머니들끼리 고스톱을 치면서 고작 160원을 잃은 것을 두고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죠. 또 다른 하나는 재철과 충수가 복권을 말아 담배를 피우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고요.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160억 원짜리 당첨 복권인 줄도 모른 채 말이죠(단위는 다르지만 금액의 숫자가 똑같은 ‘160’인 것에 주목하세요).

여기서 우리는 ‘가치의 상대성’이라는 말을 알게 돼요. 엽기 할머니들은 눈앞의 160원을 두고는 상심하면서도, 끝순이가 날려 버렸다는 160억 원은 감히 체감하지를 못해요. 할머니들에겐 당첨금 160억 원보다 고스톱을 치며 잃은 돈 160원이 훨씬 ‘크고 소중한’ 돈인 거죠. 또 재철과 충수는 당첨 복권을 담배로 피워 버리면서 당첨금을 하늘로 날려 버리지만 그들이 나누는 사랑과 화해의 가치는 160억 원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것이었죠.

영화 ‘마파도’의 밑바닥에 숨겨진 진짜 주제는 바로 ‘행복의 진정한 가치’였던 거예요. 행복은 돈이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요.

[3] 생각 넓히기

여기서 우리는 마파도에 사는 다섯 할머니를 한명 한명 뜯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들은 어떻게 구성됐나요? △똑 부러지는 성격의 회장댁(여운계) △평소엔 과묵하다가 청천벽력처럼 소리 지르며 강력한 주먹을 날리는 여수댁(김을동) △기상천외한 욕지거리를 해대면서도 산신당에서 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 진안댁(김수미) △남자를 밝히는 예쁜이 마산댁(김형자) △귀가 멀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젊은 할머니 제주댁(길해연)이 그들이죠.

알고 보면, 이들은 ‘독수리 5형제’처럼 절묘한 역할 분담을 통해 탄탄한 팀워크를 갖고 있어요. △회장댁은 최고 리더로서 할아버지나 할머니 같은 집안 어르신을 △여수댁은 과묵하고 터프하지만 속정이 깊은 아버지를 △진안댁은 잔소리가 많지만 늘 자녀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는 어머니를 △좌충우돌하는 마산댁은 장난꾸러기 아들을 △말없는 제주댁은 순종적인 딸을 떠올리게 하죠. 이를테면 다섯 할머니는 하나의 ‘대안가족(代案家族)’이었던 셈이죠.

(대안가족: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일반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편부모와 자녀, 독신자, 동성애자들이 이루는 가족 등 기존 가족 개념에 대한 대안적인 가족 형태)

[4] 뒤집어 생각하기

재철과 충수는 다섯 할머니에게서 걸쭉한 입담 세례를 받죠. 할머니들은 총각들의 등목을 시켜 주거나 아픈 총각들을 보살펴 주면서 “궁둥이 실한 것 보소” “그래도 거시기는 멀쩡하다카이” 하면서 성적(性的)인 농담을 일삼죠. 총각들은 이런 농담에 얼굴을 붉히고요.

영화에선 비록 구수하게 그려지지만 이런 일이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질 경우 우리는 이를 뭐라고 규정하나요? 바로 ‘성폭력(성추행)’이라고 하죠.

여러분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어요. ‘성폭력은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에요. 아니에요. 성폭력은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인 행동이나 말을 함으로써 육체적 혹은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죠. 마파도라는 단절된 사회에서는 ‘강자’가 누구인가요? 바로 다섯 할머니죠. 이들은 무시무시한 낫을 들이대는 ‘무언의 압력’을 통해 총각들로 하여금 강제노역을 하도록 만들잖아요?

마찬가지로 여성 직장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언행을 했다면 그것도 성폭력에 해당돼요. 성폭력의 개념은 이처럼 상대적이죠.

[5] 내 생각 말하기

오늘은 재미난 문제를 내볼게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재철과 충수는 로또복권으로 담배를 말아 피웁니다. 당첨된 복권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런데 만약 담배를 피우다가 재철과 충수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담뱃불을 껐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부분이 불타 버린 로또복권에 대해서도 당첨금이 주어질까요? 혹시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면 훼손된 복권도 전액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 보세요.

☞정답은 다음 온라인 강의에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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