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디자이너]<11>CF감독 백종열 씨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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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CF는 단순히 광고로 끝나지 않는다. 15초나 30초에 불과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압축해 담아 낸다. 세상과 소통하는 CF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어지며 유행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CF가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CF를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에 오감을 집중해야 한다. 기다려 주지 않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잡으려면 ‘하나의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년 수십 편의 CF를 감독해 온 백종열(36·617대표·사진) 씨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디자이너이다.》

○ 스타보다 아이디어로 승부

누리꾼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 TV CF(www.tvcf.co.kr)에서는 매주, 매달 인기 CF 랭킹이 발표된다. 1월 인기 CF 랭킹에 백 씨가 감독한 현대카드 ‘올챙이’ 편이 3위에 올라 있다. 20위 안에는 현대캐피탈과 우리투자증권 등 백 씨의 작품이 2편 더 있다.

이 사이트의 순위는 광고 효과를 가늠하게 해준다. 누리꾼들의 평가가 즉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TBWA 코리아 등 광고대행사와 함께 백 씨가 감독한 최근 CF에 대한 누리꾼들의 평가는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는 것.

백 씨의 CF는 스타 유명세보다 아이디어와 감각을 앞세우는 게 특징이다. 올챙이 편은 만화와 팝업북이 펼쳐지는 형식으로 구성돼 톱스타를 쓰지 않고도 주목도를 높이고 정보를 쉽게 전달한다. 현대캐피탈 CF도 실사와 만화를 결합한 형식으로 대기업 광고로는 신선하고 용기있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CF는 모두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기업과 상품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려 지루하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 만화와 그래픽 디자인으로 다진 실력

지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네이버 광고도 백 씨의 작품이다. 백 씨의 617은 48편에 달하는 네이버 CF를 제작했다. 이 CF들은 유행했던 영화 개그 게임의 장면들을 편집해 네이버 검색 기능과 연결시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백 씨가 제작한 CF를 보면 차별화된 특징이 더 있다. 바로 그래픽 디자인이다. 백 씨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첫출발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CF에서 타이포그래피(글자의 운영)나 그래픽 구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에서 만화를 전공하다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거친 뒤 ‘글씨와 그림이 있는 종이’라는 광고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1994년 당시 패션계를 강타했던 청바지 브랜드 닉스의 인쇄 광고를 제작했다.

당시 패션 광고들은 예쁜 모델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획일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닉스는 카피도 쓰지 않고 청바지와 관계없는 듯한 강렬한 사물 이미지 하나만을 던지는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다. 백 씨는 이 시리즈로 광고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백 씨는 광고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표명한 광고주에게 “닉스가 고급 브랜드를 표방한 만큼 대중이 못 알아듣는다고 친절하지 말자, 감성적인 이미지로 접근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적중했다.

○ 디자인은 절제다

백 씨는 닉스 청바지 광고를 제작할 때 경험이 없었던 것이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디자인은 절제”라는 단순한 철학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은 결정적인 ‘한 방’을 남기는 과정”이라며 “장황한 메시지와 장식을 걷어내고 마침내 그 ‘한 방’을 내놓는다면 소비자와 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2003년에 20편, 2004년 30편, 2005년 50편에 이르는 광고를 제작했음에도 아직 멀었다는 그의 말이 소통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한다.

백 씨는 CF에 주력하는 한편 문구 브랜드 ‘moon9’의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브랜드는 2000년 직접 만들었다가 중도에 다른 업체로 넘긴 것이었다. 그는 “디자인의 어느 분야든 절제의 미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다짐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글=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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