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ML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향남(香男). 향기 나는 남자.

지난주 야구팬들은 투수 최향남이 뿜어낸 향기에 흠뻑 빠졌다.

34세의 나이. 올해 2승 5패의 평범한 성적. 이제는 한물갔다는 평가. 최향남은 이 모든 난관을 모두 넘어섰다. 비록 10만 달러(약 1억 원)의 싼 값이지만 메이저리그의 명문 구단 클리블랜드에 입단하면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어젖혔다.

누구나 그렇듯 먹고 살기 힘든 시대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기 힘들다. 그렇지만 최향남은 달랐다. 그는 안정적인 한국 생활을 포기했다. 한국에 남았어도 연봉 1억 원 정도는 제시할 구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렸다. 아내 최성미 씨도 처음엔 반대했다. 그러나 최향남의 열정은 그녀의 반대도 응원으로 바꾸었다. 그랬기에 팬들은 더욱 감동했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최향남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LG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1998년. 그는 가운데 머리만 샛노랗게 물들인 일명 ‘아파치 머리’를 하고 나타나 야구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요즘이야 선수들이 염색이나 귀고리를 통해 자유롭게 개성을 발산한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코칭스태프는 진노했다. “당장 염색을 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다음 날 최향남은 머리 전체를 노란색으로 물들인 ‘노랑머리’로 나타났다. 천보성 당시 LG 감독은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선발 예고된 최향남을 빼고 김민기로 교체하기까지 했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선발예고 불발 사건이었다.

이때도 최향남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선구자’ 최향남이 있었기에 그의 후배들은 현재 자유롭게 머리를 물들이고 있다.

이번 클리블랜드와의 계약으로 최향남은 순수 국내 프로야구 출신으로는 첫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제 많은 선수들이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10년 쯤 후에는 ‘향기 나는 남자, 최향남’이라는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