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수비형 미드필더 찾습니다”

  • 입력 2005년 10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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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이 강한 팀은 승리할 수 있지만 수비가 강한 팀은 우승을 할 수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모든 스포츠에서 통하는 법칙이다. 공격보다 수비가 먼저라는 뜻이다. 공격이 강한 팀은 한두 경기는 몰라도 시즌 내내 모든 경기를 이기기는 힘들다. 오히려 공격이 잘 안될 땐 조직력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삼성의 선동렬 감독이 “수비가 안 되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겠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3할 타자 1명도 없이 ‘지키는 야구’로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의 핵이다. 2002월드컵 때 김남일이 맡았던 그 자리다. 스리백이나 포백의 최종 수비 라인 바로 위 중앙이 그 위치다. 인체로 말하면 배꼽이나 같다. 그의 임무는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것이다. 상대팀이 속공으로 몰아붙일 때 일단 파울이나 거친 몸싸움으로 저지해야 한다. 그래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닻을 내리는 사람’이란 뜻의 앵커맨(Anchor man)이라고도 한다. 앵커맨은 육상 릴레이 최종주자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끝내주는 사람’인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압박의 선봉이다. 그가 상대 공격수를 강하게 압박해야 상대 공격이 지연된다. 그 틈에 동료들은 수비진을 정비할 수 있고 수비도 늘릴 수 있다.

배가 정박하려면 닻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배가 출발하려면 다시 닻을 올려야 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의 키플레이어이지만 공격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것도 단 한번의 송곳 패스로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그 순간이 바로 절호의 역습 찬스가 되는 것이다. 공격을 하던 상대 선수들의 몸은 무게중심이 대부분 앞쪽으로 쏠려 있어 갑자기 수비를 하려면 역모션이 될 수밖에 없다.

첼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위를 질주하는 데는 공격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드 마켈렐르(프랑스)의 힘이 크다. 프랑스 대표팀의 파트리크 비에라(유벤투스), 독일대표팀의 디트마어 하만(리버풀)도 마찬가지. 이들은 수비도 잘하지만 최전방 동료에게 찔러주는 킬 패스가 좋다. 한국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대부분 패싱력에 문제가 있다. 볼을 멀리 차내거나 파울로 끊는 것에 급급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12일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젊은 피’ 이호(21·울산 현대)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워 재미를 봤다. 이호는 매끄러운 볼 처리와 깔끔한 패싱력으로 갈채를 받았다. 앞으로 최근 부상에서 회복한 김남일(28·수원 삼성)과의 경쟁이 볼 만해졌다. 이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국제 경험이 적다. 반면 김남일은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것에는 능하지만 패싱력이 약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엔 아직 이들이 성이 차지 않는 것 같다.

“한국 팀은 수비 라인에서 공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미흡하다. 수비 라인에서 컨트롤이 잘 돼야 공격도 살아난다. K리그 경기를 보면서 계속 훌륭한 수비수를 찾고 있다.”

그렇다.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를 이어주는 유니버설 조인트다. 그 연결고리가 덜컹거리면 경기가 엉망이 된다. 그는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상이 잦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소금 역할을 한다.

요즘엔 어느 조직이나 튀는 사람이 너무 많다. 뒤에서 몸을 던지는 수비형 미드필더 같은 사람은 오히려 왕따가 된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공만 내세운다면 지구는 누가 지킬 것인가.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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