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내가 좋아,야구가 좋아?…‘날 미치게 하는 남자’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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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즐기는 여자 린지(드류 배리모어)와 인생을 즐기는 남자 벤(지미 팰론)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사진 제공 무비랩
일을 즐기는 여자 린지(드류 배리모어)와 인생을 즐기는 남자 벤(지미 팰론)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사진 제공 무비랩
《드류 배리모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남녀 모두 기분 좋게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면 코웃음부터 치는 남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라고 공감대를 느낄 만한 대목이 많다. 여자들의 심리에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영화들과 달리, 남자들끼리의 끈끈한 연대와 스포츠광(狂)의 세계도 통찰력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운명적 만남과 필연적인 사랑, 알콩달콩 사랑 싸움에 이은 낭만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비켜 가진 않는다. 》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인 고교 수학교사 벤, 일에만 빠져 사는 일중독자인 비즈니스 컨설턴트 린지. 벤이 학생들을 이끌고 린지의 회사를 견학하면서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두 남녀는 만나게 된다. 갑작스러운 린지의 복통으로 어그러진 첫 데이트. 벤은 린지가 토해 놓은 것을 치운 것은 물론, 변기 청소에 애완견의 이빨까지 닦아 주는 섬세함으로 린지를 사로잡는다.

이들의 행복한 연애는 메이저리그 시즌이 개막되면서 서서히 금이 간다. 여자친구 부모와의 상견례보다 레드삭스 팀의 스프링 훈련 캠프에 따라가는 것이 우선이고, 애인이 파울 볼에 맞아 기절한 것도 모른 채 행운의 공을 주운 남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하는 벤. 처음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벤의 야구 열정이 상호 보완되는 조건이라며 은근히 좋아했던 린지도 차츰 짜증이 난다.

영화는 ‘덤앤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바비와 피터 패럴리 형제 감독이 연출한 작품. 그럼에도 이들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엽기적이고 발칙한 상상력보다, 따스한 사람의 온기와 유쾌한 아이디어들이 반짝인다. 원작은 ‘어바웃 어 보이’를 쓴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자전적 작품인 ‘피버 피치(Fever pitch)’다.

원작에는 축구광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야구광으로 대체됐다. 드류 배리모어의 깜찍함이야 이미 알려진 것이고, 국내에서는 낯선 얼굴인 지미 팰론이 여자들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유머와 매력, 자상함을 갖춘 벤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둘의 사랑의 배경이 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와 열기 띤 관중석의 응원 장면도 적재적소에 활용돼 볼거리와 재미를 보태 준다. 여기에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극적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활약상은 영화의 박진감과 이야기의 그럴듯함을 더하는 양념 역할을 해낸다. ‘밤비노의 저주’란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팀의 간판선수인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뒤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 베이브 루스의 애칭이 바로 밤비노였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침내 밤비노의 저주를 풀어 버렸듯, 벤 역시 사랑의 힘으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를 풀어 버린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보스턴에 이사온 벤은 레드삭스의 경기를 통해 혼자라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 뒤 23년간 심적으로 동고동락해 온 레드삭스 팀은 그에게 일편단심 짝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반은 어른, 반은 아이 같았던 벤은 드디어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야구장을 가로질러 벤에게 달려가는 린지. 보통 이런 결정적 장면에서는 남자가 달려나가기 마련인데 이런 예상을 뒤집는 점도 신선하다. 7일 개봉.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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