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통제불능 강력반… '강력 3반'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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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캐릭터들과 꽉 짜인 이야기가 돋보이는 형사 액션 영화 ‘강력 3반’. 사진 제공 젊은기획
개성있는 캐릭터들과 꽉 짜인 이야기가 돋보이는 형사 액션 영화 ‘강력 3반’. 사진 제공 젊은기획
뻔한 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건 별난 영화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이런 뜻에서 30일 개봉되는 ‘강력 3반’은 웬만한 할리우드 장르 영화 뺨칠 정도로 딱 떨어지게 만든 수준급 형사 액션물이다. 단, 영화 시작 3분의 2 지점까지만.

신참 형사 홍주(김민준)는 범인을 잡는데 천부적인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속한 강력 3반은 만년 꼴찌. 15년차 베테랑이지만 가족에게 버림받고 건망증에 시달리는 문 형사(허준호), 과학수사를 한답시고 범인을 놓치기 일쑤인 재철(김태욱), 범인 검거를 늘 점수로만 계산하는 육 반장(장항선). 어느 날 강력 3반에 대형 마약 조직의 거래 정보가 입수되고 이들은 미술관을 위장 운영하며 기발한 방식으로 마약을 유통시키는 거물 서태두(윤태영)와 맞닥뜨린다.

‘강력 3반’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함께 살아있다. 이 영화는 배우 허준호 장항선 김태욱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는 방식으로 기본 캐릭터를 구축한다. 그들은 연기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캐릭터와 연기력을 하나로 풀칠했다.

영화는 관록 있는 조연들의 비중을 주연을 ‘잡아먹기’ 직전까지 늘린 뒤, 이들이 만들어 놓은 강력한 캐릭터의 자장(磁場) 속에 주인공 김민준이 함께 ‘묻어가도록’ 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하는 김민준은 울부짖거나 대사를 속사포처럼 늘어놓을 때 단어를 입안에 두고 우물거리는 발음상 문제점을 드러내지만, 저마다 크고 작은 사연들을 짊어지고 가는 주변 캐릭터들의 호연 덕분에 그는 돈키호테처럼 호기심도 많고 고민도 많은 입체적인 인물로 비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판에 박은 것’의 위험을 피하는 대신, ‘전형적인 것’의 효율성을 살린다. 웃음을 주는 마약 판매 중간책 ‘개스통’(유해진)에서부터 열혈형사를 꿈꾸는 풋내기 교통경찰 해령(남상미)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을 철저하게 전형화시켰다. 이들 캐릭터에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대사와 설정(예를 들면 처음엔 즐겁지만 종국엔 치명적인 문 형사의 건망증 같은)을 정교하게 올려 태우는 것이다. 낙천적이고 우스꽝스럽다가도 난데없는 살기(殺氣)와 공포가 쑤시고 들어오는 호흡 조절로 영화는 꿈틀거린다.

하지만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올린 이 영화는 정작 클라이맥스 지점에 이르러 허탈할 정도로 이야기의 공백을 드러낸다. 이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기보다는,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폭발력 있는 이야기를 찾지 못한 아이디어 부족 탓으로 보인다. 난데없는 ‘서부극 식 한판’이라니. 이야기에 액션을 삽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액션에 이야기를 녹여 넣는 데는 실패한 이 영화가 운명적으로 갖는 한계인지 모른다.

또 거대한 실제 경찰헬기가 두 대나 촬영에 동원된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까. 형사의 고단한 삶과 직업적 고민을 곳곳에 지혜롭게 숨겨 놓지 못하고 웅변조 대사를 통해 대번에 쏟아내 버리는 직설법도 이 영화 제목만큼이나 촌스럽다.

악당을 연기한 윤태영은 이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다. 저질스러운 기운이 줄줄 흐르는 눈빛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근육질 몸뚱이로도 그는 징그럽고 사악한 카리스마를 발산할 줄 안다. 악당의 카리스마는 그의 최후로 ‘완성’되는 법. 그의 마지막이 더 설득력 있었더라면 그는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에 필적할 만큼, 관객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진짜 나쁜 놈’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손희창 감독의 장편 데뷔작.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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