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매니지먼트계 빅마마 ‘싸이더스HQ’ 박성혜 본부장

  • 입력 2005년 3월 17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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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 박성혜 본부장. '21세기형 매니지먼트' 세계에서는 스타의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한 발 앞선 기획력이 있는 매니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강병기 기자
국내 최대의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 박성혜 본부장. '21세기형 매니지먼트' 세계에서는 스타의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한 발 앞선 기획력이 있는 매니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강병기 기자
국내 최대의 연예인 매니지먼트 업체인 ‘싸이더스HQ’의 박성혜(35) 본부장.

그는 1994년 영화배우 염정아를 시작으로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 등 여러 스타의 매니저였고 지금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싸이더스HQ’에는 전도연 박신양 정우성 김선아 이미연 전지현 조인성 등 60여 명이 소속돼 있다.

박 씨는 매니지먼트계의 ‘빅 마마’다.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배우 4명과의 사연을 중심으로 ‘스타의 그림자’로 살아온 그의 세상살이를 들어본다.

○ 지진희…“누나, 배우가 그렇게 좋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사 제작으로 최근 끝난 SBS 드라마 ‘봄날’에 출연한 지진희(32)가 화제가 오르자 눈에 띄게 목소리가 밝아졌다.

1999년 당시 김혜수와 전도연의 매니저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지진희를 우연히 만났다. 연예인 같지 않은 지진희의 순수한 얼굴에 ‘필이 꽂혀’ 1년이나 따라다닌 끝에 배우로 데뷔시켰다.

“진희야, 너 배우 하면 잘될 거야.”(박성혜)

“누나, 그런 얘기 하면 안 만난다. 난 사진 계속할 거야.”(지진희)

어느 새 누나 동생이 된 두 사람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꼬박 1년을 설득했을 때 ‘콧대 센’ 사진작가가 불쑥 연락을 했다.

“정말, 배우가 그렇게 좋아?”(지)

“1년만 내게 시간을 줘. 스타로 만들어 준다는 게 아니다. 배우가 얼마나 좋은지 느끼게 해 줄게. 해 봐서 아니면 말고….”(박)

지진희는 일하던 스튜디오에서 불경기로 인원을 줄이게 되자 총각인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며 사진을 그만두었다. 그는 ‘벼락스타’가 되지는 않았지만 MBC ‘대장금’ 이후 정상급 연기자가 됐다.

○ 김혜수…“처음엔 네가 너무 싫었어.”

지금은 한 해 300억 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는 매니지먼트사를 책임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박 씨의 꿈이 매니저는 아니었다. 명지대 영어학과 출신으로 의류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다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매니지먼트 업계에 뛰어든 것.

그가 염정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매니저를 맡은 배우가 김혜수(35).

그가 없었다면 박 씨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혜수는 10년 전에 이미 스타였고, 박씨는 월급 50만 원의 ‘로드 매니저’였다. 말이 매니저지 전화를 받거나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촬영 현장을 따라다니는 것이 일의 전부였다.

“혜수가 처음에는 한 달간 저랑 말을 안 했어요. 난 당시 운전도 못 했죠. 스타는 운전하고 매니저는 옆에 앉아만 있으니…. 나중에 들은 얘긴데 지금 이 힙합 분위기의 헤어스타일이랑 분위기가 너무 싫었대요.(웃음)”

게다가 ‘초보’ 매니저인 박 씨가 비행기 표를 가지고 있다 늦는 바람에 김혜수와 CF 촬영 팀이 출국하지 못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수 억원의 피해가 예상됐지만 뜻밖에도 김혜수의 반응은 잘됐다며 사실은 좀 쉬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지금까지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김혜수에게서 매니저 일을 배웠다는 게 박 씨의 말이다.

○ 전도연…“언니, 우리 할 만큼 다했지.”

배우와 매니저는 불가피하게 공동운명체가 된다. 배우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다시 매니저 것이 된다.

지난해 평론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 ‘인어공주’가 흥행에는 실패했다. 전도연(32)은 박 씨가 김혜수와 함께 가장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배우다. 작품을 결정할 때부터 함께 고민하고 흥행에 실패한 뒤 배우와 늦은 시간까지 쓴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요즘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스타의 뒤편에서 살아가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일을 그만 두려고 결심한 게 30번은 될 겁니다. 오랜 시간 스타와 함께 있다 보면 ‘나는 무엇인가’라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어요.”

1997년 영화 ‘러브 러브’ 촬영 때 만난 이지은(34)도 그가 잊지 못하는 배우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택시를 타고 촬영 장소인 경기 남양주시로 달려갔다. 이지은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 씨에게 안기면서 ‘왜 이제 왔느냐’며 펑펑 울었다. 위험한 장면의 촬영이 있었고 배우와 제작진이 마찰을 빚고 있었던 것.

“나이 차이도 별로 없는 배우가 나를 ‘엄마처럼’ 여기며 우는 걸 보고 함께 울었다”는 박씨는 “그때 배우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매니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 반짝 스타, 반짝 매니저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지만 스타 한 명이 수십, 수백 억을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 과거에는 국내 CF와 작품의 개런티를 놓고 협상을 벌이는 게 매니저 일의 전부이다시피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한류(韓流)가 뜨고 있는 일본과 동남아 시장의 경향 파악은 물론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모바일 등 각종 뉴미디어를 이용한 뉴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똑똑해지라’고 주문을 걸지 않으면 ‘반짝 스타’처럼 ‘반짝 매니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보다 한 발 앞서 사고해야 스타의 그림자 또는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한류, 한류 하면서도 막상 정부는 체계적 지원을 해주지 않고 배우와 기획사가 알아서 하는 형편이라 답답하기도 합니다.”

이날 저녁 박 씨의 사무실 근처 포장마차에서 못 다한 얘기를 나눴다. 지진희가 그에게 새로 산 차를 보여 주기 위해 잠깐 들른다는 전화가 왔다. 자신을 이끌어 준 이에 대한 스타의 변함없는 관심이다. 박 씨의 눈에 약간 눈물이 보였다면 착각일까. 박 씨는 다시 배우와 매니저는 한마디로 ‘징글징글한’ 관계라며 웃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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