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허창회]기상예측에 極地데이터 활용을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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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서울대에서는 지난해 남극 탐사 도중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재규 씨의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 학술대회가 열렸다. 전 씨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학원생으로 남극 연구를 자원해 월동대원으로 탐사에 참여했다.

학술대회에서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김예동 소장을 만났다. 김 소장은 극지연구소에서 남극과 북극의 기상을 관측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우리나라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자료는 쌓이는데 한국에서 이를 받아 적절히 활용할 파트너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 소장에게 극지 기상이 우리나라 겨울철의 한파, 그리고 여름철 강수량 및 북서태평양의 태풍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설명했다.

남·북위 각 60도 이상 지역을 극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기 때문에 최근까지 대기과학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1998년 미국 워싱턴대 기상학과 존 월러스 교수가 중위도와 극 지역 사이에 거대한 대기순환의 변동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극 진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열대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엘니뇨가 열대 지역 및 북미, 중미 지역의 기상에 영향을 끼치는 반면 극 진동은 중위도와 고위도 기상을 지배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극 지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뿐 아니라 남반구에도 있기 때문에 극 진동은 ‘북극 진동’과 ‘남극 진동’으로 나뉜다. 이 극 진동은 중위도와 고위도 간에 해면기압의 크기가 서로 엇갈리며 평년보다 높아지고 낮아지는 현상이다. 즉 고위도 기압이 평년보다 낮으면 중위도의 기압은 평년보다 높아진다. 그와 반대로 고위도 기압이 높아지면 중위도 기압은 낮아진다. 그런데 이들 기압의 변화는 대체로 위도에 평행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북극 진동은 북미, 유럽, 그리고 아시아 넓은 지역의 기상에 동시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고위도에서 해면기압이 평년보다 낮고 중위도에서 해면기압이 높은 시기를 북극 진동의 ‘양의 상태’라고 한다. 이 시기에 북유럽에서는 많은 비와 눈이 내리고, 남유럽에서는 건조한 날씨와 고온이 지속된다. 한편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해양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평년보다 많이 불어오기 때문에 온도가 높아진다.

북극 진동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활동에도 직접 영향을 끼쳐서 러시아뿐 아니라 몽골과 중국 북부 지역의 대기순환도 조절하고 있다. 이 영향은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겨울철 한파와 여름철 강수량도 북극 진동의 크기에 따라 변한다. 극 진동과 동아시아 기상 간의 관련성에 대한 역학적인 설명, 그리고 장기예측 활용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와 중국 학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편 여름철에 북서태평양의 태풍 활동은 우리나라 정반대편에 놓여 있는 남극 주변의 대기순환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올해는 남극 진동이 강한 해였으며, 일본에 무려 10개의 태풍이 상륙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남·북극의 기상이 우리나라의 기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기상예측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극지 관측 데이터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시급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어서 아쉽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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