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인천 옹진군 부도 항로표지관리인

  • 입력 2004년 10월 14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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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등대만큼이나 외롭고 고독한 일상을 보낸다.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것이 인근 바다를 아무 탈 없이 오가는 배들이다. 강병기기자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등대만큼이나 외롭고 고독한 일상을 보낸다.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것이 인근 바다를 아무 탈 없이 오가는 배들이다. 강병기기자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봤을 노래.

부서지는 파도와 조개, 흰 갈매기만이 오고 가는 검은 바다 위의 신호등.

외딴 섬의 등대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외부세계와 떨어져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사는 그들의 이야기. 등·대·지·기.

○ 한달 근무해야 일주일 육지 나들이

기자가 방문한 등대는 인천 옹진군 영흥면 외리 산 203에 위치한 부도등대. 섬 크기가 학교 운동장만 한 아주 작은 무인도다.

섬은 작지만 부도등대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 꼭 100년 전인 1904년 4월에 생겼다. 정식 명칭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부도 항로표지관리소(소장 권혁무).

94년부터 등대란 이름은 항로표지관리소로, 등대지기는 항로표지관리인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등대 또는 등대지기로 남아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직원 4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등대의 종류는 크게 유인, 무인, 등표, 부표 등으로 나뉜다. 유, 무인은 말 그대로 등대에 사람이 있느냐 여부에 따른다. 등표는 암초 같은 아주 작은 섬에 세워진 등대를, 부표는 바다 위에 떠서 해로를 안내해 주는 등대 모양의 신호기를 말한다.

유인등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인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한 달 정도 근무를 하고 일주일간은 육지로 나와 쉰다. 한번 항로표지관리인이 되면 부서를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퇴직 때까지 이 형태로 근무를 해야 한다.

약 2, 3년 주기로 해당 해양수산청 관할 내 등대를 돌아가며 근무한다고 한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신고식을 단단히 치렀다. 이끼가 수북한 선착장에서 미끄러져 다친 것. 부도의 징크스 중 하나로 처음 오는 사람은 항상 당하는 일이란다.

○ 불 꺼지면 죽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등댓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따로 정해진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등대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모든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석유 기름등을 쓰던 시절에는 여러모로 잔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요즘은 태양전지와 발전기로 불을 밝히기 때문에 기계를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이 주가 됐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등대 내의 등명기(일종의 빛이 나오는 전구 같은 것)와 등명기가 설치된 등롱실 유리창을 닦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밤에 불을 켜기 때문에(등댓불은 밤에 대략 60여km 떨어진 곳까지 보인다고 한다) 온갖 날파리, 곤충들이 달려드는데다 가끔은 멍청한 새들이 와서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순 작업이기는 하지만 한참을 닦다보니 ‘등대지기’ 동요에 나오는 가사 같은 마음이 든다. ‘생각하라∼저 등대를∼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마음은 거룩한데 팔이 아프다.

정해진 근무시간과 밤 당번은 있지만 사실상 밤이든 휴일이든 전원근무, 전원 대기상태다. 고장이라도 나면 혼자서는 고칠 수 없으니 전부 달려들게 마련.

잘 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옅은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불이 꺼진 것을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등대를 보살피는 것 외에도 3시간마다 기상청에 파도높이, 구름의 양, 풍향, 풍속, 시계 등을 측정해 알려줘야 한다. 우리가 TV 일기예보에서 흔히 보는 ‘백령도 앞바다 파고 몇 m’ 등의 정보는 모두 전국의 등대에서 측정해 알려주는 것이다.

○ 고독이 몸부림칠 때

손바닥만 한 무인도에 남자들만 사니 외로움은 가장 큰 적. 요즘은 취업난이 심해져 이직률이 낮아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한 번 왔다 간 뒤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오래 한 나이든 사람은 괜찮은데 젊은 사람들이야 견딜 수 있나. 짧으면 20일에서 길면 40여일을 섬에 있어봐. 고독이 몸부림치지.”

권 소장의 말이다.

그래서인가. 항로표지관리인들의 대체적인 특성이 말이 별로 없거나 자기 의사표현이 좀 어눌하다고 한다.

뭘 물어봐도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씨익 웃거나, ‘거시기’, ‘그냥 그래요’ 등의 의미가 불분명한 토속 한국어를 많이 사용한다.

몸부림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각자의 방마다 침대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은 베개. 밤마다 끌어안는 애인이다.

아무리 무인도라지만 사람 있는 곳에 웃기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이들이 가장 화내는 일이 밤낚시하러 온 사람들의 행패(?)다. 배 위에서 볼일을 볼 수 없으니 몰래 선착장에 내려서 일을 보고 가는 것.

“아, 생각해봐. 선착장 중앙에 한 무더기 쌓여있는데. 남의 집 대문 앞에 ×싸고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선착장 중앙은 남자들, 선착장 옆 창고 뒤는 여자들이 주로 애용한다고 한다.

물이 안 나오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식수는 육지에서 생수를 가져오고 빨래나 세면은 빗물을 받아서 사용한다. 요즘은 그래도 괜찮은데 갈수기 때는 물이 모자라 잘 씻지 못할 때도 많다.

“샤워 못하면 찜찜하지 않아요.”

“남자끼리 있는데요 뭐.”

하긴. 군인들 얼굴 검은 게 꼭 훈련 때문만이랴.

○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가 남들처럼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일반 경조사나 명절 등은 그림의 떡.

김은홍 주임(46)의 경우 한번은 등대로 돌아가기 위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아이가 그랬다고 한다.

“아빠 또 놀러와.”

지금은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권 소장의 경우 아내가 아픈데도 근무 때문에 등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남들 같으면 옆에서 지켜주기라도 하련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한 달은 지나야 아내를 볼 수 있다.

함께 밤바다를 거닐다 무심코 질문을 던져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별 재미도 없을 것 같은 단조로운 생활. 무슨 보람이 있을까.

“그냥 배가 잘 지나다니는 것을 보는 게 보람이죠. 그게 우리 일이기도 하고요.”

역시 건질 것 별로 없는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이들이 구구절절 자세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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