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참사 3주년]<2>미국인 삶의 태도가 변했다

  • 입력 2004년 9월 7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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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 9·11테러 당시 뉴욕 소방관이었던 남편을 잃은 미망인 타냐 빌레누바.

그는 올해 9·11 테러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 감사해한다.

떠들썩하게 기사를 쏟아냈던 1, 2주년 때와는 달리 조용하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 관련 기사만 보면 당시의 끔찍한 장면이 떠올라요.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잠을 편히 잘 수 없고 주위 사람들의 관심도 부담스러워요.”

뉴욕 타임스는 7일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도하면서

“미국인들은 9·11을 경험한 뒤 가족 및 친구와 가급적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면서

“심지어 하루 24시간을 가족과 보내려는 미국인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족의 품으로=미국의 인구통계 전문지 ‘아메리칸 데모그래픽스’는 2002년 9월호에서 “9·11테러가 미친 가장 큰 영향 가운데 하나는 미국을 가족중심사회로 바꿔 놓은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성인남녀 2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74%였지만 1년 뒤에는 84%로 늘었다. 9·11 이후 아예 가족을 위한 ‘패밀리 타임’을 따로 정해놓았다는 사람도 34%나 됐다.

3명 중 1명은 평소 가족에게 전화하는 횟수를 늘렸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척에게 일부러 전화를 거는 사람도 15%나 된다. 친척 선물비용을 늘리기도 하고, 집과 가족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혼율은 눈에 띄게 줄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12월 95만4803건이었던 이혼 건수가 2003년 12월에는 92만60건으로 3.6% 줄었다.

특히 9·11테러를 직접 당한 뉴욕주는 2001년 6만6643건에서 2003년 6만2294건으로 6.5% 감소했으며, 워싱턴도 같은 기간 1658건에서 1162건으로 29.9% 줄었다.

‘욕망의 진화’를 쓴 미래학자 멜린다 데이비스는 “인간은 생존 위기에 처하면 가족이란 구조 안에서 안전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면서 “9·11 이후 21세기 생존전략은 강력한 인간 결속”이라고 진단했다.

뉴저지주 럿거스대의 수전 뉴먼 교수(사회심리학과)도 “미국 시민들은 9·11 이후 잊고 있던 가족애를 깨달았다”면서 “가족주의적 경향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전에 대한 불안이 커지다보니 홈 시큐리티 장비를 구입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심지어 히스패닉계 미국인 가운데 46%는 아이들이 바깥으로 놀러 나가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9·11 이후 유언장과 ‘살아있을 때 해야 할 목록’을 써두는 현상도 나타났다.

▽불안에 떠는 지구촌=불안해진 것은 미국뿐이 아니다. 일본도 자국 외교관이 이라크에서 살해되고 자국민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어느 때보다 높아진 테러 가능성에 불안해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올해 7월 20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안전에 관한 특별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55.9%가 “현재의 일본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51.4%가 ‘테러 행위’를 들었다.

유럽도 마찬가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스위스 국민조차 ‘유럽의 9·11’로 불리는 3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이후 불안을 느끼고 있다. 취리히대 군사학연구소는 “마드리드 테러 이후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사람이 25%나 더 많아졌다”고 밝혔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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